황포묵
황포묵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5.2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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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8미’가 언급된 것은 가람 이병기의 시조가 처음이다. 1950년대 초, 전주시 교동 양사재(養士齋)에서 지은 근음삼수(近吟三首)가 그것이다. 이 시조에서 가람은 완산8미로 △기린봉 열무 △신풍리(송천동) 호박 △한내 무 △상관 게(蟹) △남천(南川) 모자 △선왕골 파라시(감) △소양 대흥리 서초(西草·담배) △오목대 황포묵을 꼽았다.
 '전주야사'를 쓴 이철수는 산지(産地)를 조금 더 넓혀 △사정리(서서학동) 콩나물 △서원넘어(華山동) 미나리를 더해 '10미'라 했다.

‘(중략)전주팔경이 눈으로 즐기는 풍경이고 보면, 입으로 즐길 수 있는 ‘전주8미’가 있으니, 음식 사치로 유명한 이 고장의 자랑이라면 자랑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당골 파라시(8월에 먹는 감), 기린봉 열무, 오목대 청포묵, 소양(所陽)담배, 전주천 모자(물고기), 한냇 게, 사정골 콩나물, 서원(書院) 너머 미나리로 모두 전주 음식의 감칠맛이 자랑이라면 자랑이 되는 것들이라 하겠습니다’
신석정이 발표한 수필 ‘전원으로 내려오십시오’에 ‘전주팔미’가 나온다. 전주비빔밥이 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전주팔미(全州八味) 중 서목태(鼠目太)라 부르는 쥐눈콩과 함께 옥구 참기름, 그리고 오목대에서 생산한 황포묵에 기인한다. 여기에다 맛좋은 고추장 참기름, 그리고 계절 따라 나는 푸성귀를 고명으로 얹는 신선함이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운다.
전주는 예부터 수질이 좋아 콩나물에 쓰이는 콩의 품질이 좋았다. 무와 오이, 당근, 애호박, 표고버섯 등도 들어간다. 특히 밥은 소 양지머리 고기를 푹 고은 물로 지어 비빌 때 밥알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윤기가 나도록 했다. 전주비빔밥은 물에 데친 콩나물과 쇠고기 육회 또는 볶음, 황포묵을 고명으로 빠뜨리지 않고 있다. 오목대 부근의 지하수가 깨끗하고 황포묵을 만드는 조건에 딱 맞아 떨어져 예로부터 유명했다.
황포묵은 한때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전주비빔밥을 즐겨찾아 서울 신세계 백화점에 납품했다고 하며, 허영만의 '식객'에도 소개됐다. 황포묵은 녹두 청포묵에 노란 치자물을 들여 만든 묵이다. 반면 청포묵은 녹두를 갈아 앙금으로 만든 묵으로 해열·해독 작용과 보양에 좋으나 색깔이 곱지 않은 게 흠이 었다. 때문에 격을 더욱 높인 게 황포묵이다. 탱탱하면서도 낭창낭창한데다 맑고 노란 색감이 입을 유혹한다.
전주비빔밥에 빠져선 안될 황포묵은 어디서 나올까. 남원은 1989년 소복순 여사가 사망함에 따라 맥이 끊겼고, 전주 청식품이 남았다. 아중저수지 인근에서 3대째 가업으로 130여년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황포묵 장인으로서 뿐 아니라 전주비빔밥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산증인이지만 그에 대한 대접이 소홀한 것 같아 안타깝다.
/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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