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커피
전쟁과 커피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6.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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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용기를 끌어내주는 커피를 병사들에게 나눠 주자!”
커피를 군수품으로 처음 이용한 사람은 나폴레옹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평소 커피 광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시대에 자작 하라스에게 총애를 받아 출세의 기회를 잡은 것도 그가 자주 다녔던 카페 '이탈리아'에서 였다. 더욱이 커피는 술보다 자극이 적은 음료인 점도 군인들의 사기를 돋우는 효율적인 군용품으로 이용하기에 딱 좋았다.

나폴레옹은 커피를 군사 전략으로도 활용 했다. 1806년 베를린에 입성한 나폴레옹은 최대의 적군인 영국을 표적으로 대륙봉쇄를 실행했다. 섬나라인 영국의 해상무역에 큰 타격을 주어 숨통을 조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도리어 프랑스가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조치로 커피를 더 이상 수입을 할 수 없게 되어 자국인 프랑스인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 이후 나폴레옹의 군대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결국 세계정복의 꿈은 물거품이 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커피를 사랑한 영웅이 커피로 인해 큰 꿈의 실현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40~1950년 무렵에는 우리 커피의 휴지기나 다름없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커피 수급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대부분의 다방들도 폐업과 전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커피에 인이 박힌 마니아들은 전쟁으로 커피 수급이 안된다고 커피를 마시지 않고 살 수는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 커피애호가들의 커피 사랑은 눈물 겹다. 민들레뿌리, 고구마, 치커리, 대두 등을 볶아서 사카린을 넣어 커피 대용품으로 마셨다. 그 덕분에 전쟁 통에도 다방은 명맥을 유지해 왔다. 해방과 함께 다방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열었다. 해방도 잠시 1950년에 6.25전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전쟁의 와중에도 커피의 명맥은 유지되었다. 피난 시절에는 부산 광복동에 다방들이 문을 열고 문인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된다. 다방들은 갈 곳 없는 문인들의 안식처이자, 동료들의 연락처, 작가들의 사무실 역할을 하였다. 1955년 발표된 김동리(金東里)의 소설 ‘밀다원 시대’도 밀다원 다방이 배경이다.
한편 미군들은 이미 1907년부터 인스턴트 커피를 대량생산하여 군용품으로 보급하였다. 6.25 전쟁 중에 인스턴트 커피는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훌륭한 보급품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 PX로부터 인스턴트 커피가 흘러나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편리성과 보관성 게다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미국산 인스턴트 커피는 급속도로 퍼졌다. 이런 추세는 1975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낱개 포장용 믹스커피를 개발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된다.
전쟁은 상대를 죽이고 무너뜨리며 차지하는 게 속성이다. 하지만 죽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며 차지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커피다. 커피는 사람의 내면에서 흐르기 때문이다. 커피는 인간의 내면을 장악하는 소리 없는 무기였다.
/권영동(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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