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5월 전주성의 한 장면 기록한 `근사록'
1894년 5월 전주성의 한 장면 기록한 `근사록'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6.1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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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서 발견된 김석두의 회고록 `근사록(近思錄)' 통해
역사의 한 조각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
김 철 배-임실군청 학예사
김 철 배-임실군청 학예사

지난달 11일 광화문 앞에서 동학농민혁명 125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15년 만에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이 제정된 것이다. 그 간의 수많은 논의 끝에 황토현 전승일, 즉 정읍 황토현 일대에서 벌어진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에서 농민군이 대승(大勝)을 거둔 날을 기념일로 제정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되는 과정의 고부봉기, 무장기포, 백산대회, 황토현 전투, 전주성 함락, 전주화약 등 일련의 사건들을 아우르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지난 1일에는 전주역사박물관에 있었던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을 완산공원 동학농민혁명 추모공간에 안장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25년, 1995년 일본에서 국내로 송환된 지 23년이란 긴 세월동안 영면에 들지 못한 것이다. 이제 전주는 황토현에서 승리한 농민군을 이끌고 전주의 감영을 함락하는데 참여하였을 그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마지막 안식처가 된 것이다.

그런데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에 입성하고 전주화약이 체결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한다. 4월 27일 용머리 고개에 진을 친 동학농민군이 서문밖 시장과 남문장터 건너편에서 공격했고, 이에 놀란 장꾼들이 서문과 남문으로 밀리듯이 들어가는 사이에 동학농민군이 장꾼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갔다고 알려져 있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공격하려는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 장꾼은 여전히 장에서 일을 봤다는 것인지, 장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는 것인지 다소 상황이 모호하다.
최근 필자는 임실의 김해김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근사록(近思錄)』에서 당시 전주성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을 찾을 수 있었다. 『근사록』은 김해김씨 삼현공파 김석두(金錫斗, 1859~1916)가 남긴 기록물이다. 처음 자료를 접하였을 때, 주자의 『근사록(近思錄)』을 필사한 것으로 오인했는데, 내용을 살펴보고서야 감영에 소속된 관속(官屬)이 기술한 일기나 연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김석두가 직접 기술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1859년 태어났을 때부터 1912년까지 시간적 순서로 특별한 내용을 수록한 일생을 정리한 일종의 회고록이라고 하겠다. 김석두와 그의 아들 김용하의 무덤이 임실 관촌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임실에 가산(家山)이 있었고, 이런 연유로 김석두의 손자 김정곤(金正坤, 1900~1944)에 임실로 이거했던 것 같다.
김석두의 『근사록』에는 당시의 사회경제상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1868년 발행됐다가 6개월 만에 중단된 당백전(當百錢) 신전(新錢)이 1878년까지도 유통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김석두가 36세에 겪었던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수록하고 있다. 김석두는 1894년 2월 법성(法聖)에 수가(收價)하러 내려가게 되는데 그 사이에 ‘동비(東匪)’가 창궐했기 때문에 다녀오는 길이 여의치 않아 오래 걸렸다고 한다. 4월 27일에 ‘동도(東徒)’가 성을 함락시키는 변란이 일어났는데 어머니의 집에도 화포가 비오듯이 쏟아져서 부득이 북쪽 검암리 종조모집으로 피했다고 하며, 5월 3일에 신임 감사 김학진(金鶴鎭)이 삼례에 당도했는데 위봉산성에 직행하여 당시 경기전과 조경묘 관련 단오제를 시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5월 5일에는 김학진이 홍계훈이 진을 치고 있는 완산에 왔다가 동학농민군이 성내에 있어서 전주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삼례로 돌아갔다는 내용이 있다. 5월 9일에 동학농민군이 사방으로 흩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성내로 들어갔는데 서문밖 장터와 서문내 화변(火變)으로 불타지 않은 곳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서문밖 내외로 상인들이 모여 있었고 각 지역의 영저리(營邸吏)들의 거소(居所)가 즐비한 곳이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전곡(錢穀)와 물화(物貨)가 쌓여 있었던 곳인데 하루아침에 불타버리는 참혹한 일을 겪은 것이다.
이와 같이 김석두는 자신의 일상을 정리하며 1894년 당시의 상황에 대해 기록해 뒀다.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더 검토해야겠지만,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이 되는 2019년에 임실에서 발견된 김석두의 회고록 『근사록(近思錄)』을 통해 전라감영의 관속이 목격하고 경험한, 전주성 입성과 전주화약 체결 등에 대한 역사의 한 부분에 한 조각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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