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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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6.16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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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실크로드 답사 때의 일이다. 거의 1년이 다 되었지만, 어제일처럼 또렷한 기억이 하나있다.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안내판에 적힌 ‘수부(首府)’를 보고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던 옆자리의 선생님 모습이다.
겨우 두 자 밖에 안되는 이 단어가 뭐 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익산의 백제사를 얘기할 때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수부’이다. 익산이 1,400여년 전 어떤 도시였는지는 그동안 발굴조사를 통해서 밝혀졌는데, 그 중심에 왕궁리유적이 있다. 그리고 이 유적의 성격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유물 중의 하나가 대형건물지에서 출토된 ‘수부’라는 도장이 찍힌 기와이다.

백제 건물지 발굴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기와들이 출토된다. 그 많은 기와 중 ‘수부’라고 쓰여진 유물은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그리고 익산 왕궁리유적과 익산토성에서만 나왔다.
‘수부’는 수도(首都) 혹은 한 도(道) 안에서 치소(治所)가 있던 곳, 즉 어느 한 국가, 지역의 중심지라는 의미가 있다. 이 단어가 새겨진 기와가 백제 궁성으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유적과 익산 왕궁리유적에서만 출토되었다는 것은 백제 후기 이곳 익산이 부여(사비)와 같은 위상을 지닌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수부’라는 단 두 글자가 익산의 백제 역사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하면, 이 자그마한 유물이 갖고있는 역사의 무게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나가는 데에 기록이 갖는 위중함이 어떤 것인가는 `사기'나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들 기록이 있었으니, 지금의 중국,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사서와 같은 방대한 기록만이 아니라, ‘수부’와 같이 단 몇 글자의 기록을 통해서 역사의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국보 제163호 무령왕릉 지석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나온 왕과 왕비의 지석이다.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언제, 몇 살에 죽었는지 등이 새겨진 52자로 된 왕의 지석은 ‘백제사마왕(百濟斯麻王)’이라는 다섯글자로 인하여 일본사학자들이 제기해 왔던 `삼국사기'의 신뢰성 문제까지도 한방에 해결해 주었다. 불과 다섯글자가.
익산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2009년 미륵사지 서탑의 해체과정에서 출토된 193자의 사리봉영기에 ‘백제’, ‘기해’라는 두 단어가 없었다면 미륵사지와 석탑의 역사성은 지금보다 훨씬 미미하였을 것이다. 명문 기와의 ‘수부’라는 단 두 글자가 왕궁리유적의 위상을 증명해 주듯, 미륵사지 사리봉영기의 두 단어가 미륵사를 말해 주듯, 기록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리하여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안내판에서 수부라는 겨우 두 글자를 발견하고 세상 다 얻은 듯 신나하던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또 어디에서 그 작고 웅대한 기록이 나타나 새로운 역사를 쓰게 할지 오늘도 설레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문이화(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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