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어느철학자의삶'](32)이사가 가르쳐 준 것
[연재소설`어느철학자의삶'](32)이사가 가르쳐 준 것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6.1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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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칠라 실버 페르시안, 샬롯은 우연찮게 주어진 기회를 십분 즐기는 눈치다.
본성과는 다른 실내생활의 무료함을 한꺼번에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비록 케이지 안이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캐츠아이 본연의 모습에서 쉬 읽을 수 있다. 동공의 실루엣으로 감정 상태를 어필한다니 얼마나 신비로운가. 내 옆자리에 자리한 케이지 안에 속박된 샬롯이지만, 산적해 있는 노동에 대비해 일단 까페로 피신해 또 다른 형태의 노동 중인 나를 한치의 방해 없이 역동적인 세상을 일관되게 관조 중이다.

“새로운 환경조성이 완벽하게 마무리될 때까지 네 다리를 사용하는 너희들은 그저 유유히 기다리기만 하면 돼.” 
난 그들이 알아듣든 그렇지 못하든, 직면할 만만찮은 노동에 대한 염려를 상쇄하려는 듯 연발했다. 사실은 내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다. 
‘열 걸음만 나오면 환상적인 산책로가 이어지는 근사한 환경은 이제 너희 편이야. 그저 즐기기만 하면 돼.’ 일시적으로 보호소에 맡겨진 보리와 몽이 형제가 마치 소머즈라도 되어 나의 혼잣말까지 들을 수 있기를 바라듯이 난 되풀이한다.
감정도 계급화되었다.
인간에 비해 동물은 생존사회에 최적화되었지만, 그 협소한 감정통로는 인간에 의해, 인간의 편의를 위해 폭발된 스트레스로 인해 더 협소화되고 그것마저 컨트롤된다. 소위 기분 내키는대로 동물들을 다룬다. 분출하는 감정이 최고조에 이를 때엔 동물의 생존기반까지 위협받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는 혼자만의 선택과 결정으론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나의 철학이 철저하게 무시당하기 일쑤고 있으나 마나다. 차선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너희들에게 최소한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생활 근간까지 바꿔야 하는 무거운 책임과 결단이 따른다. 그리고 난 지금 따르고 있다.
철저한 계급사회인 인간도 감정의 계급화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다. 유쾌하지 않아도 웃으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 근엄한 표정이 아니면 존재감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것과 달리 가벼운 사람들, 연세가 지긋한 본인에게 할머니라고 불렀다고 삿대질하며 감정이라곤 분노만을 작동하는 사모님, 또 거기에 이유를 들며 수긍하는 사회. 
각자에게 부여된 정도의 감정만이 작동하는 인간사회에 비하면 너희들에게 심리적으로 더 편안한 환경을 고심하는 동행인이 존재하는 너희들에겐 다행이 아니니?
본격적인 노동이 이어진다. 의뢰한 노동에 걸맞는 댓가지불이 합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물리력을 위시해 요구는 더욱 커져간다. 
정신적인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단순한 사람에게 가하는 위협이 정확하고 빠른 판단력이라면, 육체적인 노동자는 커져가는 물리력을 무기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이들에게 결정을 유보하게 하거나 흐리게 한다. 노동은 흘리는 땀만큼 숭고하지만, 또 그런 만큼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대안이 딱히 없을 때는 의도에 적중한다. 자본주의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이 노동력이므로 내가 대응할 만한 카드가 딱히 없다. 예스와 노만 성립하니까.
내 한 몸 바쳐 이뤄낸 미화조성이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오래된 타일은 광이 나기 시작했고, 창틀의 묵은 때는 고풍스럽게 탈바꿈하고 있다. 인접한 공원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함성과 다양한 종의 새들의 세레나데는 내게 댓가를 더 요구하지 않는다. 내게 충분한 가치를 안겨줬음에도.
“이제 모든 게 정리가 되었구나! 이제부터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이야!” /조정란(인문학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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