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태어나는 삶
날마다 태어나는 삶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7.1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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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대부분 ‘죽음’에 동의할 것이다. 누구든 생애 첫날이 오듯 마지막 날이 오고야 만다. 그러니 산다는 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일 터이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는 반대로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고 했다.
한편,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자각하여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는 누구든 자유롭다”고 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각’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시간 속을 헤매면서 살아갈 뿐이다. 원하던 것을 얻었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는 놓쳐 버린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부지기수다. 그나마 뭔가 이뤄졌는가 하면, 다음 순간에는 혼란스러운 또 다른 일이 몰려온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깊은 골짝에 기쁨과 즐거움이 간혹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은 비지땀 흘리며 등성이를 올라가야 한다.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Alfred de Musse)는 “삶은 잠이며, 사랑은 그 꿈이다”고 했다. 우리는 허망한 꿈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서히 알아차리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깨닫고 성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울 수 있는 비결이다. 서서히 ‘태어나야 하는 것’은 바로 자기의 내면이다. 밖으로 돌렸던 눈을 안으로 향하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융(Jung)의 이론을 빌리자면, 우리는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질 용기를 내야 한다. 이미 가면과 일체가 되어 사회적 호칭, 역할, 권위에만 갇혀 버렸다면, 가면을 벗는 연습을 스스로 해야 한다. 가면을 아예 쓰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자주 가면을 벗고 진짜 내 모습을 스스로 볼 수 있다면, 나는 서서히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 첫걸음을 떼고 난 뒤에는 내 안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추악하기 그지없는 내 안의 나를 직면해서 껴안아 준다면, 나는 더없이 부드러워질 것이다. 게다가 터무니없이 커져 버린 내 안의 그림자는 마치 얼음이 해동하듯 작아질 것이다. 그런 후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성이다.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아니마)과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아니무스)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이상형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였음을 알게 된다. 그것을 깨닫는 것은 바로 심층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한 통합과정이다. 내 안에 있는 전혀 반대되는 성을 수용하게 되면, 삶의 구심점이 보인다. 그리하여 결국 ‘자기(self)’를 향해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온전하게 태어나는 과정이다. 보이지 않는 내 안의 세계가 열리고 확장되는 것이다.

최근에 가수 김도향이 새 앨범 ‘Inside(인사이드)’을 냈다. 그의 노래 중 ‘굼벵이’는 죽음을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으로 표현했다. 죽음을 새로운 차원으로 묘사하는 것은 낯설지 않다. 죽음을 오랫동안 연구한 미국의 의사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는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냐는 물음에 한마디로 답변했다. “평온입니다” 잘 죽기 위해서라면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야 한다. 그 길밖에 없다.
/박정혜(심상시치료센터장, 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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