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어느 철학자의 삶] (36)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휴가
[연재소설 `어느 철학자의 삶] (36)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휴가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7.1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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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휴가를 이야기하는 시기가 왔나보다. 주말마다 이용하는 열차 안의 변화된 추이가 달력보다 정확히 말해준다. 업무나 가족, 친구와의 만남처럼 단순한 일정이 아닌 보다 스페셜하고 활력까지 더해진 모습들에서 ‘휴가’란 설레는 이름이 붙는다. 그 설레는 손님이 어느새 내 앞에 아른거린다.
노는 것도 일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잘 놀고, 더 잘 알리는 것이 존재감을 확인시켜 준다고 믿고들 산다.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면 일이 되고 만다. 

편리함은 더 한 불편함을 동반한다. 놀면서 일을 만든다. 아이러니지만 자연스러운 상식이다. 그다지 일에 치인 싸이클이 아닌 내가 휴식을 논하는 것이 부끄럽다면 이미 나도 아이러니한 상식에 몸담고 있는 것이겠지. 사람은 일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닐 진데. 자본이 사람에게 쳐놓은 그물일지도 몰라. 독선과 차별의 그물.
올 더위는 한 참이나 늦는다고 한다.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맘속에선 ‘그냥 이대로만’을 외치지만, 사실 온난화의 영향 때문이란 이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느지막이 잡은 휴가 일정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잡념과 스트레스는 소멸된다.
내가 투자해야 하는 것은 일박 이일의 시간과 수영복 한 벌, 읽다 만 ‘메그 윌리처’의 소설 한 권이면 족하다. 나의 생활공간보다 월등히 우수한 컨디션에 혹해 연신 카메라를 눌러댈지 모르고 조바심까지 발동해 여기저기 퍼 나르는 유치함만은 눌러야 하기에 되도록 핸드폰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할 것이다. 오롯이! 내가! 온전하게! 휴식하기 위해.
모두가 도심을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뒤로 한 채 텅 빈 도심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큰 강을 담을 수 있는 조망권이 보장된다면 기꺼이 감사하겠다. 호텔을 감싸는 큰 산이 밤엔 상쾌한 바람을 벗 삼은 산책을 아침엔 이슬을 머금은 풀 향기를 선사해 준다면 기꺼이 감사하겠다. 
평시의 아침식사 메뉴와 다를 바 없지만, 눈앞에 펼쳐진 도심의 장관과 나의 개인용 탁자 위의 커피 향이 더해진다면 기꺼이 감사하겠다.
강렬한 태양 아래서 더욱 빛나는 파라솔과 썬 베드, 그리고 스위밍 풀. 자유와 평등이 최고의 순도로 품어 나오는 곳이 이곳이다. 태양 아래서의 질서란 자연 그 자체니까. 
매주 일요일마다 반복되는 현상임에도 어제 무리하게 날 반겨줬던 보리는 피로했나 보다. 내가 책상 앞이든, 소파 위든 자리를 옮길 때마다 따라다니면서도 수면욕은 어찌할 수 없는지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보리에게도 휴가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아마 보리야말로 휴식이 일이 될 공산이 크다. 한시도 쉬지 않고 내 곁을 지키지만,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나도 행복하다. 
천만 반려견 시대에 왜 강아지에겐 호캉스가 무리인가. 그들 역시 반려인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최고조의 행복감을 느낄텐데. 
나에게는 꿀맛 같은 휴가지만 보리에게는 공포스러운 이별이란 사실이 벌써부터 이마를 짓누른다. 올해도 접점을 찾아야 한다. 보리와 나 사이 이해의 마지노선을. “보리야! 네게 온전한 휴식이란 나를 그냥 놓는 거야. 한 시름 놓으라는 거지.” ‘내 임무를 놓으라고?’
“네게 누구도 임무를 주지 않았어. 온갖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되는 거야! 이건 이별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야! 네가 만든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그것은 행복이야!” /조정란(인문학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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