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반성하고 용서 구하는 날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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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병철 기자
  • 승인 2019.07.21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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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때문에 가문 잃은 일제강점기피해자 손일석 회장

인촌사랑방 발족 강력 저지
강제징용 피해자 모임 만들어

 

 

왼쪽부터 오세환, 손일석 회장, 김영희 씨

“일본의 식민지 이후에도 갑질 때문에 억울해서 못 살겠다”며 “조상들은 일본에서 이름 없이 죽어갔고 후손들은 간첩누명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
손회장(62·사진)은 일제강점기피해자 전국유족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의 동생 손일용(55)씨도 서울시대책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는 할아버지 8남매 중에 사할린 공사동원 및 일본 해군 착출 등으로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부친(손종표)도 일본군 자살특공대에 편입됐다가 다행히 탈출해 고창중고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하다가 9년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새마을지도자 고창지회장을 지냈던 유택주(82)씨는 “일본에서 오셔서 한국말은 배우고 미술은 가르쳤던 훌륭한 손종표 선생님이 눈에 선하다”라고 증언했다.
한편 작은 아버지와 두 형은 공연히 간첩으로 몰려 경찰서에 끌러가 허위자백과 고문에 시달린 끝에 평생 멍든 몸과 함께 자식들은 연좌제에 의해 직장을 얻지 못하고 삶이었다.
이는 1984년에는 ‘10월 유신과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살펴보면 군부가 정권을 잡아서는 안된다’는 대화들이 전두환 정권에 빌미를 준 것이다.
손 회장 부친의 유언은 “일본은 적이었으므로 정신 차리고 간첩으로도 오해받지 말라”며 “자중지란 일으키지 말고 서로 뭉쳐야 한다”면서 제삿날에는 세분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손 회장은 전국적으로 친일 행사에는 앞장서서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일제 청산 및 자주 민족정신을 심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 17일 고창문화의 전당에서 400여명이 모여 100세 철학자의 강연과 함께 인촌사랑방 발족을 강력 저지하며 몸싸움까지 벌이기도 했다.
그는 1994년에 제42차 일본 재판소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유서 6장을 남기고 일본으로 떠나기도 했다.
그의 삶은 1984년에 일본노무자징용 징병신고 공고를 통해 1989년에 110명의 고창피해자모임을 만들고 30년이 지난 지금은 정읍·부안·고창에 일본피해자 유가족 1,600여명이 등록됐다.
피해자 유가족 전국회원 26만명 가운데 10만 여명은 진상이 규명 됐으며 이에 따라 고창지역은 200여명이 사망위로금으로 2,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자포리마을에 사는 김영희(69) 신림지회장은 “부친이 일본에서 석탄차량에 깔려 두 발목을 절단한 채 평생을 살다가 9년전에 돌아가셨다”면서 힘든 삶을 말했다.
손 회장은 때때로 가정을 돌보지 않고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로 인해 아내로부터 미움도 사고 버거운 삶을 살아가지만 오늘도 두 손 모아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가고 있다.
그는 고창고 53회 졸업생으로 5.18때에 계엄군으로 참여하는 등 하사로 군복무를 마치고 대산면에 사는 김광주씨와 결혼한 뒤 대외활동 외에도 할머니, 양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도 짓고 있다.
대산면 오세환(57)씨는 “부친도 일본 탄광 강제징용 피해자로써 70세까지 평생을 폐렴과 기침으로 온돌에서만 살았다”고 덧붙였다.
손 회장은 “고창에는 김성수, 서정주 외에도 오산교에 우일승천기 174개가 조각되어 있다”며 “일본사람 하토야마 및 나카야마, 이노우에상 같은 과거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며 선린우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고창=안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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