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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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혜(심상시치료센터장·전주대 겸임교수)
  • 승인 2019.07.3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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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정윤성 화백
/삽화=정윤성 화백

 

무대 공포증이 있는 한 배우가 있다. 가장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다. 어느 날 은밀한 제의가 들어온다. 김일성 대역을 해보라는 것이다. 밀도 깊은 세밀한 연기 지도와 주체사상까지 지도받는다. 거울을 보고 수도 없이 되뇐다. 자신은 김일성이라고. 비밀 프로젝트 덕택에 집안의 사정이 나아진다. 정상회담 리허설을 앞두고 공식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갑자기 무산되고 프로젝트도 취소되고 만다. 하지만 배우는 뼛속까지 김일성이 되어버린 후였다. 결국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영화 ‘나의 독재자’의 줄거리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동일시’라고 일컫는다. 어떤 대상을 동경한 나머지 자신이 그 대상이 된 것처럼 느껴 실제로는 실현할 수 없는 만족을 얻게 되는 심리 메커니즘이다. 영화 같은 상황이 최근에 일어났다. 이번에는 김일성이 아니라 피부과 의사이다. 지난 24일 MBC 교양 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 방영된 인물은 오랫동안 연극을 해온 배우다. 어느 날 돌연히 피부과 의사로 둔갑하고 만다. 2016년에는 피부과를 개업하고 의사가 되어 마음껏 시술을 했다.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속출하자 들통난 것이 겨우 한 달 전이다. 그의 행각은 화려한 사기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의 보안 컨설던트가 된 프랭크 윌리엄 애버그네일 주니어(Frank William Abagnale, Jr)를 떠올리게 한다. 겨우 17세의 나이에 프랭크는 팬암사의 파일럿, 하버드의대 수석 졸업, 예일 법대 출신 변호사로 둔갑하면서 사기를 치고 다녔다. 50개 주 은행을 순회하며 무려 140만 달러를 횡령한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그렇지만 그도 외과 의사를 사칭했을 때에 직접 치료하지 않았던 양심은 있었다. 그의 행적은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또 다른 사기꾼 관련 영화로 ‘리플리(The Talented Mr. Ripley)’가 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리플리는 우연히 선박 부호의 눈에 띄게 되고 부호의 아들과 동문이라는 거짓말하게 된다. 거짓들은 거짓을 양산해내고 거짓을 보호하기 위해 급기야 부호의 아들을 살해하게 된다. 그 후 자신이 바로 부호의 아들인 양 행세하다가 들키려고 하자 친구까지 죽인다. 영화 속 리플리처럼,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에 머물면서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된 언행을 계속하게 되는 정신적 증상을 ‘리플리증후군(Ripely syndrome)’이라고 한다.  피부과 의사를 사칭했던 ‘홍원장’은 ‘나의 독재자’ 속의 주인공처럼 지금 정신병원에 있어 검찰송치가 지연되고 있다. 홍원장이 썼던 가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가진 자, 배운 자에게 보이는 주위의 대접과 부러움에 찬 시선들. 군림하는 권위의 맛에 달콤한 물이 들어 가면과 하나가 되고 말았다. 스스로 온전하게 속하지 않는 열망, 주위의 눈치로 인한 헛된 자부심이 결국 그를 파멸시키고 만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떠신가. 언제라도 벗을 수 있는 가면인가, 가면과 하나가 되고 말았는가?
/박정혜(심상시치료센터장·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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