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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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8.0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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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포스탈(Going postal)’이라는 말이 있다. 자제력을 상실할 만큼 매우 화가 났다는 뜻의 미국 속어이다. 1986년 8월 20일 미국 연방우체국(USPS) 소속 우편 배달원 패트릭 셰릴이 직장 동료 14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번에도 고잉 포스탈이 연이어 터졌다. 미국에서는 일주일 사이에 벌써 네 번의 대형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캘리포니아주 북부 '길로이 마늘 페스티벌'에서 총격이 발생해 용의자를 포함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30일에는 미시시피주 사우스헤이븐에서 월마트 전 직원으로 알려진 총격범이 총탄 10여 발을 쏴 동료 직원 2명이 숨졌다. 8월 3일에는 텍사스주의 국경도시 엘패소의 대형쇼핑몰에서 총기 난사가 일어나 20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다쳤다. 4일에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오리건 지구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으로 용의자를 포함해 10명이 숨지고 최소 16명이 부상했다. 미국에서는 1966년 텍사스대 총격 사건 이후 총기 난사 사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총기로 인한 희생자가 한꺼번에 4명 이상일 경우, 총기 난사로 분류하는 통례에 의하자면, 현재 미국에서 2019년도만 251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하루 평균 1.16건의 총기 난사가 일어난 셈이다. 아수라장이었을 총격 현장에서도 ‘영웅’이 있었다. 63세 데이비드 존슨은 총소리가 나자마자 아내와 손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방패막이로 삼고 숨졌다. 글렌던 오클리 일병은 쇼핑센터 내 놀이방에 있던 어린이들을 데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자신이 영웅으로 주목받는 것조차 내려놓으며, 지금은 가족과 아이를 잃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집중할 때라고 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66년을 기점으로 해서 53년간 미국에서 총격범은 20대에서 40대가 많았고 11세 또는 13세의 어린 총격범도 있었다. 총격범은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었다. 평소 폭력적인 성향을 지녔거나 범죄 이력이 있는 이들도 있었고, 총격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총격범과 영웅으로 나뉘게 하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폭력범죄자라는 낙인을 붙이고 태어나는 자는 없다. 그것은 자라오는 동안 만나서 접하는 것들 가운데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폭력과 가학은 만연화된 스트레스 상황과 경험 속에서 형성되기 마련이다. 억압이라는 방어 기제에 갇혀서 살다가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엘빈 셈라드(Elvin Semrad)에 의하면, 우리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원천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럽지만, 굳어진 마음의 근육을 푸는 확실한 치유의 방법이다. 분노와 울분, 억울함과 좌절 같은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만 갇혀있는 것이 문제다. 심리적인 어둠을 이겨낼 수 있는 도전이 중요하다. 피하지 않고 직면하게 될 때, 올바르게 해소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총격범들한테는 직면의 순간이 없었다.
/박정혜(심상시치료센터장, 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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