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군 최초 국가사적, 동촌리 고분군
장수군 최초 국가사적, 동촌리 고분군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8.1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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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기간인 30일, 이변 없는 한
장수군 최초 국가사적 지정 쾌거”
최 재 원-장수군 문화체육관광과장
최 재 원-장수군 문화체육관광과장

 


천오백년 전 장수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고대 가야인 들의 삶과 흔적들이 확인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장수가야에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확인된 장수가야의 유적과 유물은 그 진정한 가치가 규명된다면 한국의 고대사가 바뀔 정도로 그 역사성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7월10일 서울에 자리한 고궁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에서 장수 동촌리 고분군에 대한 사적지정 최종심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장수 동촌리 고분군은 큰 이견 없이 국가사적으로 가결되었다.
이후 7월22일 문화재청은 동촌리 고분군에 대한 지정예고를 알렸다. 예고기간인 30일이 지나면 이변이 없는 한 장수군 최초 국가사적 지정이라는 쾌거를 이룬다.
장수동촌리 고분군의 국가사적 지정과정에는 많은 우여곡절과 그 의미가 부여되어 있어 속이야기를 말해보고자 한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인식에는 장수는 무진장 중의 하나로 산골이다. 역사적으로도 고대 백제의 변방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천오백년 전 장수의 모습은 앞선 인식과는 전혀 다르다.
2002년 겨울, 장수 마봉산 산줄기가 뻗어 내린 동촌마을 뒷산에도 유난히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문화재청의 의뢰로 지역 문화재를 조사하고 있던 군산대학교 박물관 지표조사팀도 수북이 쌓인 눈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평소 같으면 조사를 포기할 법도 한데 그날따라 무언가에 이끌리듯 눈 쌓인 동촌리 뒷산을 조사해 보고 싶은 큰 욕구가 차올라 수북히 쌓인 눈을 헤치며 조사를 진행했다.
그날의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동촌리 고분군은 없었을지 모른다. 소위 말하는 대박을 직감한 지표조사팀은 바로 군청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리고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성격을 밝힐 것을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당시만해도 문화재보다 앞선 정책들로 인해 묵과되었다고 한다.
달리방법이 없어 문화재청 긴급 발굴비 공모를 통해 동촌리 고분군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성과는 예상하듯이 엄청났다. 그동안 영남지방에서 조사된 가야고분에서 확인된 유물과 비슷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통해 가야의 왕이 묻혔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발굴조사에 대한 예산지원이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이 동촌리 고분군의 역사성을 재차 확인시키는 데 역부족이었다.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 장수군에서도 지역문화에 관심을 두는 정책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2015년 학예연구사를 채용하고 체계적인 문화재 관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동촌리 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와 전수조사가 동시에 진행되어 일원에 육안으로 확인가능한 중대형고분 83기가 확인되었고 이에 대한 측량조사까지 완료하였다.
발굴조사 성과를 통해 2016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132호로 지정되어 문화재의 역사성과 위상을 인정받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정권이 바뀌며 국정과제에 초대를 받은 가야사 조사 및 정비는 그동안 가야사가 홀대에서 벗어나 역사의 한축으로 자리매김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북지역의 가야사가 초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동안의 동촌리 고분군에서 확인된 연구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정과제 포함이후 국립나주문화재 연구소에서 국비 3억원의 예산을 들여 장수 동촌리 고분군 28호분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결과 고분의 주인이 범상치 않은 분이라는 것과 그동안 확인된 장수지역 가야무덤과는 다른 양식의 모습이 보여 졌으며 장례문화가 간소화 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학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2018년 하반기에 국가사적 신청에 도전하여 약 8개월 만에 국가사적지정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신청부터 지정까지는 8개월이란 기간이지만 동촌리 고분군이 알려진 이후부터로 한다면 약16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였다.
동촌리 고분군의 국가사적지정은 학술적 성과뿐 아니라 여러 상호작용에 의해서 이다. 특히 장수군에서 문화재를 사랑하는 민간단체인 장수가야 지킴이의 역할도 한몫했다.
가야지킴이들은 문화재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화재로 인한 규제로 인한 고통보다 문화재 보존관리로 인한 혜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문화재로 지정하는데 지역주민인 지킴이들이 앞장섰다. 이는 현지심사를 나온 문화재위원들의 마음을 흔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국가문화재 지정을 준비한다면 이점을 꼭 참고하길 바란다.
동촌리 고분군은 무관심속에서 방치로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유적지였지만 몇몇의 지속적 관심에서 시작되어 그 끈을 놓지 않아 국가사적지정이라는 큰 성과를 이루었고 가야문화에 있어 장수가야의 위상을 드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 이라는 말이 있다. 즉 물을 마실 때에는 그물의 근원을 생각하고 그 우물을 판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동촌리 고분군은 장수군의 역사에 있어 그 근본이 되는 중요 문화재로 그것을 지키기 보존하기 위해 소리 없이 노력한 사람들의 마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동촌리 고분군 국가사적지정은 장수군 최초의 사적지정으로서의 의미도 크지만 사적지정을 위해 단합된 장수군민의 보이지 않는 노력의 결실이라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는 동촌리 고분군 보존과 활용을 위한 정비, 복원, 토지매입에 필요한 예산 중 85%가 국도비로 지원받는다. 타 시군 사례를 통해 약 100억원의 국도비를 사실상 확보한 셈이다.
지원받은 예산으로는 유적지의 보존과 활용사업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유적지 경관정비, 무덕복원, 발굴조사 체험장, 유물전시관건립 등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하는 관광자원화가 가능하며, 이를 통해 자연스레 관광객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우리군민의 역사인식개선, 자금심향상이 최우선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우리의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야 말로 풍요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힘찬 장수를 맞이할 우리 군민들의 자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많은 장수군의 문화유산이 국가사적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유적들이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
/최재원 장수군 문화체육관광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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