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달그락] 참회와 반성의 역사 새겨 나가길
[달그락달그락] 참회와 반성의 역사 새겨 나가길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8.2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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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청소년,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② 군산 문화재 야행길을 걸으면

군산을 찾는 연간 관광객의 수가 2018년 500만을 돌파 했다. 1900년대 개항초기 일본 등의 다양한 외국 문물들이 군산항을 통해 유입되면서 군산은 다양한 역사, 문화 공간이 존재한다. 관련해서 홍보와 안내 자료는 많지만 그곳에 깃들여있는 역사적 의미와 군산시민들의 정신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역사교과서에는 분량이 적은 군산 나아가 대한민국의 근대역사에 대해 청소년들이 접근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에 청소년 기자단이 그 장소를 찾아가보고 인터뷰를 진행하여 ‘청소년이 바라 본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연중 기획연재 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2일부터 4일까지 1차와 16일 부터 18일까지 2차로 나눠서 근대역사박물관 및 일원에서 군산 야행을 진행하고 있다. 군산시에서 주최를 하고 문화재청과 전라북도에서 후원하는 군산 문화재 야행은 군산의 문화재를 여러 컨텐츠와 융합해 흥미롭게 알리고,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여러 공연과 스템프 투어, 부스 운영으로 구성했다. 군산세관을 시작으로 10곳의 스탬프 투어로 이루어진 곳들은 관광객들과 군산시민들의 흥미를 끈다. 군산시간여행마을로 가봤다.

■ 동국사의 이야기
 

그림 : 윤은서 청소년기자

 

이 절은 1913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지어졌고, 돌을 윤곽하는 끌채로 조동종 금강사라고 쓰여 있었다. 조동종은 일본 불교 종파의 이름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졌을 때 조동종 금강사로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의 이름이 아닌 우리나라의 이름으로 동국사로 이름 붙여졌다. 건축양식을 보면 우리나라 사찰은 용마루는 곡선이고 처마는 화려하지만 일본의 사찰의 용마루는 직선이고 처마는 단조롭다. 그리고 종각에는 범종이 있다. 그곳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이 범종은 일본 교토에서 제작된 것이다. 1919년에 일본 장인이 범종을 제작해서 금강사에 보내왔다. 범종에 적힌 시조문은 일본 천황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군산에는 당시에 시계가 없었는데 매 시간 정각에 타종을 해서 군산 시민에게 알려 주었다. 주소가 대일본 조선 전라북도 군산부 라고 적혀있다. 동국사 한켠에는 참회문이 있다. 참회문은 조동종 종파의 스님이 명성황후 시해와 종교를 빌미삼아 민족을 학살했고 많은 악행을 한 것에 사죄를 한 내용이다. 하지만 다른 종파에서 반대가 매우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동종 스님들이 비문을 가져와 세운 것이다. 그런데 군산시민들이 이 참회문이 있는 것조차 모르기도 한다. 우리가 관심 갖지 않았던 것을 한번 다시 돌아 볼 필요가 있다.


■ 구 법원관사 이야기
 

그림 : 윤은서 청소년기자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대 때 판사, 검사들이 살던 곳이다. 이 건물을 보면 출입문이 왼쪽,오른쪽에 하나씩 있다. 검사들은 왼쪽 문으로 들어가 2층에 살고, 판사들은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1층에 살았다. 건물의 외관은 ㄱ자 형태로 되어있고, 네덜란드 풍의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다다미 방, 도코노마, 오시이레 등 일본식으로 꾸며져 있다. 건물은 2018년 8월 6일날 등록문화재 726호로 등록이 되어있다. 1940년대에 지어졌는데 원형관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현재 이곳은 민간인이 살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연못자리도 있다. 오른쪽에 두 개의 돌기둥 위쪽에 보면 동그랗게 장식물이 부착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장식물은 일장기를 표현한 것으로 기둥 당 4개가 부착되어 있다. 유럽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형태이다. 일제강점기 후반의 건물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기둥아래에는 선유도와 비응항에서만 나오는 돌로 구성되어 있다.
해설사 채재승씨는 “개항이후 호남지역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횡포를 알리는 등 가슴 아픈 역사이지만 사실대로 군산시민들, 관광객들에게 알리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퇴직 후 군산시의 문화유산 이야기꾼 사업에 참여해 교육을 이수하고 해설사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계기와 소감을 말했다. 군산의 역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물으니 “실제로 SNS에 군산역사에 대한 내용을 올리면 그것을 보고 찾아오는 분들도 계신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요즘 시민들이 많이 찾는 매체에 내용이 적극적으로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취재후기

'아 내가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다.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군산의 길을 따라 걷다보니 역사의 흔적들이 있었다. 옛 군산 사람들이 일본인들과 차별받고 자신들의 재산을 수탈을 당했던 실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늦은 지금이지만 분노의 감정도 느껴보고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훼손 되거나 찾지 못했던 문화재, 유산들이 있었는데 지금부터라도 이런 유적을 잘 보존하기 위해 시민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진영, 원채은, 박승민, 서종학, 김소현, 윤은서 청소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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