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합총서와 전북
규합총서와 전북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8.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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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문으로 기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가정백과 사전으로
술과 음식, 바느질, 길쌈, 병 다스리기, 살림 등 내용 수록”
이종근-문화부장
이종근-문화부장

‘물을 특별히 가려야 장의 맛이 좋으니 여름에 비가 갓 갠 우물의 물을 쓰지 말고, 좋은 물을 길어 큰 시루에 독을 안치고 간수가 다 빠진 좋은 소금 한 말을 시루에 붓는데, 물은 큰 동이로 가득히 부으면 티와 검불이 모두 시루 속에 걸릴 것이니 차차 소금과 물을 그대로 떠서 메주의 양과 독의 크기를 짐작하여 소금을 푼다(장 담는 법)’
친절한 설명에 조리과정 사진까지 곁들인, 제대로 된 레시피 하나만 있다면 제 아무리 솜씨 없는 주부라도 그럴 듯한 요리 한 그릇 뚝딱 내어낼 수 있다. 조선 부녀자들에게 ‘규합총서’(閨閤叢書)는 그런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규합’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을 가리키는 말로, 부녀자들이 알아야 할 가정살림과 일반교양에 대한 내용을 모두 정리해놓은 백과사전이다. 많은 분야에 방대한 지식을 보유했던 상류층 여인 빙허각 이씨(1759~1824)가 1809년 만든 이 책은 주제별로 나눠 필사되거나 목판본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기록된 책에는 장 담는 법, 술 빚는 법, 옷 만드는 법부터 밭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는 법, 올바른 태교 방법, 심지어 부적과 주술로 마귀를 쫓는 일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고 분명하게 서술했다. 각 사항 별로 인용한 책 이름을 작은 글씨로 표기했고, 자신이 직접 실행해본 결과와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요긴한 지식을 한 데 모으며 저자는 서문에 “진실로 일용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요, 부녀가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빙허각 이씨가 51세에 저술한 ‘규합총서’는 언문으로 기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가정백과 사전으로 술과 음식, 바느질, 길쌈, 병 다스리기, 살림 등 다양한 내용이 집필되어 있다. 그녀는 전주 이씨로 조선 영조 35년(1759)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총명해 15세 때부터 저술에 능하고 한문학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씨의 남편은 박제가, 이덕무 등 실학자들과 교류했던 서유본으로 ‘규합총서’라는 책명은 그가 지어줬다고 한다. 빙허각은 평양감사를 지낸 전주 이씨 집안 이창수의 딸로 태어났다. 이 해는 최초의 페미니스트 저술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것으로 널리 알려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총명하기가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정도였고, 젖니를 갈 무렵에는 자신의 이가 다른 아이보다 늦게 갈린다고 스스로 이빨을 뽑을 정도로 고집이 세고 당찼다. 아이의 아버지 이창수는 학자로 슬기로운 딸에게 어려서부터 다양한 학문을 지도했다. 이 아이는 나이 열한 살 때 빙허각(憑虛閣)이라고 자신의 호를 스스로 정한다. ‘빙허각(憑虛閣)’은 ‘허공에 기대선 여자’라는 뜻이다.
‘규합총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순창고추장을 지역특산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고추장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와 양을 조목조목 열거하였다. 이 책에서는 ‘고추장을 담글 때 소금이 아닌 간장으로 간을 맞추는 새로운 방법이 소개되고 있으며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대추 두드린 것과 육포가루, 꿀을 한 숟가락씩 넣으면 좋다’ 고 했다.
이 책엔 우리나라 8도에서 나는 것으로, 김제 능금, 남원 종이, 임실 시설, 무주 청옥채(靑玉菜), 자옥채(紫玉菜), 전주 연엽찜(蓮葉, 소의 볼기에 붙은 고기), 전주 만마도(만마관) 종이, 마곡 종이, 화각기(畵刻器), 소접(작은 접시), 죽력고, 순창 고추장, 책지(冊紙), 진안 담배, 모시 등이 유명하다고 했다.
‘규합총서’에 애저찜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새끼 밴 어미돼지의 배를 갈라 새끼집 속에 쥐 같이 들어있는 것을 깨끗이 씻는다. 그 뱃속에 양념을 넣고 통째로 찜을 하면 맛이 그지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돼지새끼집은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살아있는) 어미돼지를 일부러 잡으면 숨은 덕(德)을 쌓는 것만 같지 않으니 그저 연한 돼지로 대신하라' 는 충고를 곁들이고 있다.
원시인들은 사냥을 하고 고기를 먹기 전에 자연에 감사하며 먹었다고 한다. 진안에도 그런 관습에서 붙여진 음식이 있다. 예전에 어미 돼지의 뱃속에서 죽은 새끼돼지를 보양식으로 먹은 음식이 애저이다. 그래서 돼지 ‘저(猪)’ 앞에 슬플 ‘애(哀)’ 자를 써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은 음식이 애저찜이다. 요즈음 날씨가 오락가락 하면서 몸이 많이 지칠 때이다. 가을의 길목에서 몸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보약을 많이 해 먹는다. 약재로 먹는 보약도 좋지만 먹을거리로 섭취해 먹으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체력이 떨어진다고 생각이 들면 진안에 들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애저찜을 먹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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