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 선생과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의 해
가람 이병기 선생과 독립운동 100주년 기념의 해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9.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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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가람 선생과 독립운동 100주년”
김익두-전북대 국문과 교수
김익두-전북대 국문과 교수

어느 해보다도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해가 이제 중원(中元)을 넘어 가을로 기울어졌다.   한 해의 많은 일들 중에서 우리 민족의 정기를 살리는 가장 큰 일은 우리나라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고, 이에 근거해서 우리의 자긍심을 높이고 미래에로의 새로운 지평을 계획하는 일이었다. 이 일에 우리는 지상파를 비롯한 여러 방송 · 신문들이 동참해서, 그동안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쓰신 분들을 기리고 그 정신을 되새겨, 어려움에 처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타개하는 힘으로 삼고자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을 되돌아보면 어찌된 일인지 ‘예술문화계’ 쪽은 감감하고 정치적인 독립운동 쪽에 너무 지나치게 기울어진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한 나라의 ‘독립정신’은 꼭 ‘정치’ 분야에서만 기려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문화의 여러 분야가 다 함께 어우러져 가능한 것임은, 백범 선생도 일찍이 말씀하신 바와 같다.

우리가 독립운동사 100년을 되돌아볼 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문화예술계 쪽에서 꼭 기억해야만할 분은, 바로 1891년 우리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참실골/진사동’에서 출생하신 가람 이병기 선생이다.
고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에 의하면, 가람 선생은 ‘단 한 줄의 친일문장도 쓰지 않은’ 올곧은 우리나라 근현대 국학자 · 문인으로 기술되어 있다. 우리나라 큰 ‘국학자들’과 시인들 예컨대 춘원 이광수 · 육당 최남선 등과 달리, 가람은 일제강점기기가 시작된 뒤부터 일제가 손을 들 때까지 올곧게 오로지 우리 민족의 독립과 자주와 문화의 융성을 위해 온몸을 던지신, 우리나라 최고의 근현대 국학자이다.
가람은 한성사법학교 재학 시절인 1911년에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한흰샘 주시경 선생을 만나, 그로부터 민족정신과 ‘조선어’의 소중함을 배운 후, 선생의 나이 30세 때인 1921년에는 권덕규 · 임경재 등과 함께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를 발기 · 조직, 1926년 ‘시조회’, 1928년 ‘가요연구회’ 등을 조직 · 활동하셨다.
선생이 51세가 되시던 1942년, 그러니까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일삼던 그 시절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남 홍원감옥에서 1년간의 옥고를 치렀고, 1945년 해방이 되자, 미군정청 편수관을 지내시며, 우리나라 해방공간 교육계의 국어국문학 분야 초중등교육의 기초를 놓으셨다. 1957년에는 선생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신 『우리말큰사전』의 간행을 보았다. 또한, 우리 고을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을 만드시고, 그 초대 학장을 지내신 것은 전북의 큰 자랑이기도 하다.
선생이 남기신 업적은 그 분야로 보나 질과 양으로 보나 근현대 우리 국학자 · 문인들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우선 그 업적의 분야를 보면, 국어학 · 국문학(고전문학 · 현대문학) · 구비문학/민속학 · 교육학 · 역사학 분야 등에 걸쳐 다양하다. 그 양으로 보아도, 춘원 이광수가 20권, 육당 최남선이 15권 정도의 전집을 남긴 데 비해, 가람은 30권 분량의 전집을 남기고 있다. 이 『가람 이병기 전집』은 현재 전북대출판문화원에서 간행 중이고, 현재 5권이 출간되었으며, 올해 연말까지 10권까지가 출간될 예정이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좀 늦게라도 우리나라 최고의 근현대 국학자 가람 이병기 선생을 기리는 계기들이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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