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값하는 삶
나이에 값하는 삶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09.0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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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일 뿐
중요한 것은 나이다운 실천행”
손 시 은-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손 시 은-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사람은 죽는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생명의 기운이 다하면 죽음을 맞는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역사 이래 불로장생을 시도한 사람은 많았으나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인도 카필라국의 왕자였던 석가모니 부처님도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했다. 그리고 오랜 수행 끝에 인간의 괴로움이 욕심에 근원한다는 진리를 깨닫고서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여기서 해탈이란 진리적 차원에서 모든 번뇌와 미혹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것이지 육체의 물리적 노화과정이나 죽음 자체를 초월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기 마련이다.
 최근 OECD 주요 국가 중 한국 여성의 평균 수명이 85.4세라는 조사 발표가 있었다. 2030년에 태어나는 여아의 기대수명은 세계 최장 수준인 90세에 이른다고 한다.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늙음에 대한 정의도 새로 쓰여야 할 것 같다. 국어사전에서 ‘늙다’의 뜻을 찾아보니 “나이를 많이 먹다. 사람의 경우 흔히 중년이 지난 상태”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럼 ‘중년’은 몇 살 정도나 될까 하여 다시 찾아보니 “마흔 살 안팎의 나이. 청년과 노년의 중간 시기”라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불혹을 솔찬히 넘기고 지천명을 코앞에 둔 나는 이미 늙거나 또는 적어도 늙어가는 사람으로 규정될 것이다. 그러잖아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터에 세상이 나를 아예 ‘노인’ 취급하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든다. 100세 시대를 앞두고 2015년 UN이 제시한 새로운 생애주기별 연령지표에 따르면 아직 한창때인 청년인데 말이다.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말로 그러하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고 우편으로 받아본 결과서에 쓰인 신체나이는 주민등록상의 공식 나이보다 세 살이나 적었다.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정신연령 테스트라는 것을 해보았더니 나이보다 오히려 많게 나왔다. 69세인 네덜란드의 한 남성은 자신이 느끼는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스무 살 정도 젊고, 건강검진 결과 생물학적 나이도 45세였다면서 공식적인 나이를 49세로 낮춰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다.
 이처럼 나이는 시간과 마찬가지로 조건에 따라 개인이 체감하는 정도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조화되며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연대기적 나이(연령) 개념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몇 살이냐가 아니라 ‘어떤 나이로 살 것인가’, 즉 나이의 값어치를 하는 삶이다.
노인에 관한 언론 기사를 읽다보면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같은 댓글이 자주 등장한다. 어른이 어른답게, 나이에 값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경제활동에서 밀려나 노령연금 얼마에 자존심 버리고 살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노인들에게 소위 ‘나잇값’을 하라는 것이 과연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명절 때에나 겨우 얼굴 보는 손주 손에 용돈 몇 푼 쥐어주고 싶어 아픈 허리와 뻣뻣한 무릎을 동전파스 하나로 참아내며 품을 파는 노인이 많은 우리 사회는 품위 있게 늙어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우리는 제 나이보다 말이나 행동이 조숙한 아이를 일러 ‘어른스럽다’고 하고, 지나칠 정도 영리한 아이를 ‘영악(靈惡)하다’고 한다. 과유불급이라 했으니, 이런 아이들도 ‘나잇값’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에게 ‘나잇값’을 강요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의 ‘나잇값’은 잘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현실적 삶과 괴리된 ‘나잇값’은 숫자에 불과하다. 결국 나이에 값하는 삶이란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선생은 선생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삶의 균형을 잘 잡고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다. 때와 상황에 맞게 균형을 잡아가되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줄 아는 실천적 삶, 이것이 나이에 값하며 사는 삶일 것이다. 오늘 하루도 제값하며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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