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진과 단지
유석진과 단지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9.0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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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진(兪石珍, 1378~1439)은 전북 완주군 고산현의 아전이다. 그는 밤낮으로 아버지를 곁에서 모시면서 약을 구하였다. 그리고 널리 의원과 약을 구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산 사람의 뼈를 피에 섞어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하여 유석진이 즉시 왼손 무명지(無名指)를 잘라 그 말대로 하였더니, 그 병이 곧바로 나았다. '단지(斷指)'는 부모나 남편의 위중한 병에 피를 내어 먹이려고 손가락을 자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유석진 효자비는 고산읍 읍내리 428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세종실록 세종 2년(1420년) 10월 18일자에 유석진의 행적이 실려있다. 고산현의 향교 생도 지활(池活) 등이 유석진의 효행을 현감에게 고했고, 이를 전라도관찰사 신호가 나라에 올려 세상에 알려졌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효자·열녀를 각각 35명씩 뽑아 모두 105명의 행적을 소개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 책의 맨 앞에는 권채(權採)가 쓴 '삼강행실도 서(三綱行實圖序)'가 있고, 이어서 목록에서 효자, 충신, 열녀의 고사를 제시했다. 그 구성은 정초(鄭招)가 '삼강행실 발(三綱行實跋)'에서 “'삼강행실도'는 이에 기재한바 효자·충신·열녀 각각 110명의 행실을 기록하고, 또 형상을 그리고는 시(詩)로써 찬(贊: 사람의 사실을 서술한 뒤에 이를 평론하는 한 문체)했다'라고 한 바와 같이 행실에 대한 내용과 그림, 그리고 시(혹은 찬)로 이루어졌다.
바로 삼강행실도이 '유석진이 손가락을 자르다(石珍斷指)'가 실려 있다. 고을 사람들이 석진의 효행을 현(縣)과 도(道)에 추천하니, 세종대왕이 특별히 삼강행실도에 기술하라 하고 정려를 내렸다. 그 정려는 고산면 읍내 고산양로당 입구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유석진은 기계유씨로 고산현에 처음 들어온 입향조 성보의 손자이다. 원래 운제현 사람으로 고산현의 관리였다. 부친 천을(天乙)이 괴질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자 석진이 즉각 왼손 무명지를 잘라 그대로 시행하니 즉시 병이 치유됐다고 한다. 그는 죽은 후 사헌부 지평의 벼슬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명나라 태종이 삼강행실을 보고 효순(孝純)이라는 제목으로 시 2절을 지었으며, 1430년 명정이 내려졌다.
조선시대에 백성들에게 주입하던 ‘효’의 모범 사례 중 특히 이해하기 힘든 단지(斷指)는 705건 중 186건으로 26%에 달한다. 병환 중인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병구완을 한 유석진의 효도란 조선시대 사람들도 감히 따라하기도 어렵고,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조차 어렵다. ‘효’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으로 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가 고민이 깊어진다. 추석이 가까워지는 오늘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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