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직, 조선의 마지막 시서화 3절되다
이정직, 조선의 마지막 시서화 3절되다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9.09.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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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전주박물관 시민갤러리 `특별전 선비, 전북 서화계를 이끌다-석정 이정직'

국립전주박물관은 11월 24일까지 시민갤러리에서 '특별전 선비, 전북 서화계를 이끌다-석정 이정직'을 갖는다.
전북은 언제나 예향(藝鄕)으로 불렸으며 그만큼 예술 문화가 발전했다. 바로 그 시작점에 전북 지역의 선비,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이 있다.

근대 서화에서 이정직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특히 이정직이 호남 서단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고,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사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전국적으로 성장했다. 전통과 근대 사이의 변화 접경의 한가운데, 선비 이정직이 있었다. 이정직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많은 인재들은 김제로 모였다. 스승의 모습 그대로 학문과 예술에 매진한 인재들은 전북에서 근대를 열었다. 이러한 문예 활동 양상을 선보이는 이 자리는 서화첩, 석정임동향광첩 등 50여점이 선보인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프롤로그에서는 이정직이 다방면에 능통했던 통유로서의 면모를 먼저 소개한다. 황현은 이정직에 대해 “모르는 바 없고, 통달하지 못한 바가 없는, 향후 몇 백 년 동안 없을 인재”라고 했다. 풍수, 천문, 의약, 음악 등 문장과 서화 외에도 능통했던 그의 인재상을 볼 수 있는 자료를 선보인다.
1부는, 조선에서 근대로, 전통을 배우고 끊임없이 수련, 후학들에게 전했던, 법첩 연구의 대가로서의 이정직을 조명한다. 글씨뿐 아니라, 그림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수련 과정을 거쳤다. 추사 김정희를 배워 썼던 완당재현첩(阮堂再現帖)에서부터 오원 장승업 그림을 보고 배운 '오원재현첩(吾園再現帖) 등 유명 서화가의 작품을 통해 배우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중국 서예의 맥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단순히 모양을 베껴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중국 및 조선 명필가의 글씨를 수없이 임서(臨書)하면서 골자를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정직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대가들의 필적을 보는 또 다른 재미와 함께, 끊임없이 서체, 화풍 연구에 매진했던 수련 과정을 볼 수 있다.
2부는, 조선의 ‘마지막 시서화삼절(詩書畫三絶)’로 일구어간 회화 작품을 살펴본다. 사군자와 괴석(怪石) 등 그가 주력했던 회화의 소재를 통해 필력과 상징성을 추구한 깊은 내공을 지닌 문인화 세계를 보게 된다. 그는 실제 매화보다 매화 그림이 훨씬 좋다고 한 바 있다. 붓끝으로 재탄생한 매화를 통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지조와 절개, 선비정신 바로 그것이다.
3부는, 이정직을 계승한 후학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송기면(宋基冕, 1882∼1956), 조주승(趙周昇, 1854~1935) 등의 활동은 전북 서화계를 풍요롭게 했으며, 이 지역이 19세기 후반 이후 전북은 근현대 서화(書畵)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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