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삶
무소유의 삶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10.0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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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소유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법정스님의 수필집인 『무소유』를 생각한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미 미국인 헨리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가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쓴 수상집인 『월든(Walden)』 또한 미국 대학생들의 필독서일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으며, 명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생활했던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콩고드에서 남쪽으로 1마일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월든(Walden)호수는 이미 명소가 되어 명상가들 뿐만아니라 여행객들의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마침 뉴햄프셔주에 있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게 되어 보스톤에 머물면서, 이곳을 방문하여 잠시나마 명상에 잠기었고, 소로가 1845년부터 2년 2개월 2일 동안 머물면서 책을 집필했다는 세평 남짓한 오두막집과 산책길을 찾아 걸어보았다. 10월 초순이라 기온이 제법 차가워 패딩을 걸친 나의 모습과는 달리 노을이 아름다운 월든호수에는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이유가 알고 싶어졌다.
소로가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생활방식은 새벽마다 호수에서 목욕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새로 태어난 존재에 정화수로 세례를 베푸는 제의와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였으며, 목욕 후에는 청소를 하고 명상에 들었다. 그리고 오전의 남는 시간에는 농사를 지었고, 오후에는 거의 날마다 월든 주위의 숲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숲의 소리'를 듣고 나무를 보면서 숲과 호수의 주민들인 여러 동물들을 관찰하였고, 동양과 서양의 고전들을 읽으며 영혼의 허기를 달랬다. 그리고 밤이 되면 그날 듣고 보고 생각한 것들을 간추려 일기형식으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소로의 이러한 삶은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함으로써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자 하였던 것으로. 더 많은 부(富), 더 안락한 삶을 추구하던 그 시대의 미국인들이 날이 갈수록 물질과 감각의 노예가 되어 간다고 생각하며, 물질주의에 찌든 삶은 인생의 본질을 외면한 '삶이 아닌 삶', ‘개미처럼 비천하게 사는 삶’으로 여겨 자신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참자유를 찾고자 하였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으로, 소로 또한 자기 성찰을 통해 내면에 깃들인 신성(神性)을 발견하고, 그것이 계속 성장하도록 보살피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빈곤'과 '간소화'를 강조하여 이를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소로의 정신은 마하트마 간디(1869~1948)에게도 영향을 주어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에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나는 가난한 탁발승으로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밥그릇 염소젖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 않은 평판 밖에 없다”고 말한 어록이 남아 있으며, 법정스님(1932~2010)의 무소유정신 또한 선물로 받은 난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씩 버리는 마음으로 살면서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매이게 하므로, 탐욕심을 경계하라는 것이였다. 따라서 법정스님 또한 강원도 산골에서 직접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였다.
이렇게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소로의 월든호수와 오두막집, 그리고 간디의 물레, 법정스님의 나무의자 등은 무소유의 상징적인 메시지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집착을 벗어난 청정한 삶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깊게 생각해 본다.
/이승연(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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