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인권 평등의 정신
세종대왕의 인권 평등의 정신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10.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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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언어에서 차이의 언어로"
손 시 은-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손 시 은-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해마다 10월 9일 한글날을 경축하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올해 한글날 경축식의 주제인 ‘한글, 세상을 열다’라는 글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세종대왕이 한글로 열려고 하신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종대왕은 세자(문종)와 수양대군, 안평대군, 정의공주 등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우리의 독자적인 문자 창제 작전을 펼쳤다. 문자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 신하들의 강경한 반대를 충분히 예상했기에 한글 창제는 집현전 학자들에게조차 함구할 만큼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훈민정음 창제일과 관련된 정확한 기록이 문헌에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한글날도 처음에는 10월 29일이었다가 10월 9일로 다시 확정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 “9월 상한(九月上澣)”에 썼다는 정인지 서문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10월 29일을 여전히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야말로 미국 첩보영화 시리즈인 ‘미션 임파서블’보다 더 짜릿하고 위험천만한 작전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 같은 입헌군주제 사회였으면 다수 백성과 문자 권력을 공유한 세종대왕, 아니 ‘이도 대통령’은 정치권의 탄핵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과연 무엇이 세종대왕으로 하여금 이런 역경을 헤치고 한글 창제의 위업을 완수하게 한 것일까?
훈민정음 창제에는 ‘자주, 애민, 실용’의 정신이 담겨 있다. 필자는 그 모든 정신의 가장 근저에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 의식이 존재한다고 본다. 모든 인간은 신분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며, 보다 나은 삶을 살 권리를 지녔다는 세종대왕의 신념이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문자 평등 세계로 구현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글이라는 세계 최고의 문자가 주는 편익을 만끽하며 사는 지금, 우리의 언어 쓰임새는 과연 평등한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도 다문화 사회의 특징이 강해지고 있다. 2019년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만 해도 24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도 다문화에 대한 차별과 혐오 표현은 줄지 않는다.
한국인이 유독 다문화에 부정적인 것은 잡된 것을 부정하게 여기고 순수한 것을 추구하는 문화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가부장적 질서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순수혈통주의를 더욱 공고히 한 헤게모니였다. 민족 간 순수 혈통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상식이 된 오늘날에도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단일민족 망상에 사로잡혀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말이나 소 같은 동물의 새끼를 일컫는 ‘튀기’가 ‘혼혈인’을 비하하는 말로 공공연히 쓰인다.
혼혈에게 ‘잡종’이라는 말도 쓰는데, 사람에게 잡종이라고 할 때는 ‘인간성이 못된 사람’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이다. 혼혈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 판단을 내리고 부정한 존재로 대상화하는 것이다. 혼혈(인)은 그저 혈통이 다른 종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일체의 시비이해에 따른 판단과 평가, 즉 혼혈이어서 좋다니 나쁘다니 싫다니 등의 ‘어떻다’는 의미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순(純)’과 ‘잡(雜)’은 각각 섞이지 않은 상태와 섞인 상태를 대등하게 나타낼 뿐, 좋고 나쁨이나 우월하고 열등함의 의미 관계가 아니다. 잡상인을 포함해 잡것, 잡귀신, 잡탕 같은 단어에서 ‘잡’은 원래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다양성의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잡놈’, ‘잡년’처럼 비하의 의미를 가진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면서 ‘잡’은 막되고 상스러운 표현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순수한 것은 좋은 것, 잡된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순과 잡 사이에 위계가 생긴 것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어 버렸다. 수없이 강조하는데도 여전히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서 쓰는 잘못된 언어습관도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저품격 언어인식의 방증이다.
우리는 왜 자꾸 중립적 단어들을 나와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말로 전용하는 것일가? 끊없이 이런 차별과 혐오의 표현을 생성하고 유포해서 누군가를 선동하는 이들의 의도는 과연 순수한가 잡된가?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이 퇴행한 언어들이 우리 사회에 혐오를 조장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해치고 있다.
한글날을 맞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을 되새기며,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이 성숙하지 못한 언어문화에 한몫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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