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이젠 한문대신 한글로 바꿔 달자
현판, 이젠 한문대신 한글로 바꿔 달자
  • 새전북 신문
  • 승인 2019.10.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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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한자 현판이 도처에
한글세대 위해 공공시설부터 한글 사용해야"
김 중 만-원광대학교 명예교수
김 중 만-원광대학교 명예교수

9일은 한글을 반포 한지 576주년이 되는 한글날이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말과 글을 활용하는 국민임을 온 세계에 자축하고, 한글을 세계 문화의 자산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다짐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조선시대 백성을 무지몽매하게 만들었던 ‘한자 갑질’ 문화가 도처에서 눈에 띈다. 대표적인 것이 한자 현판이다. 명색이 국보 제1호인 ‘崇禮門(숭례문)’은 물론이고, 세종대왕 동상의 배경이 되는 광화문 현판도 한글이 아닌 한자 ‘門化光(광화문)’을 달아 놨다.

전주 객사 현판도 마찬가지다. ‘전주객사’라는 한글 현판이면 모든 시민과 방문객에게 친근할 텐데 ‘豊沛之館(풍패지관)’이 걸려 있다. 서순도 한글과 다르다. 게다가 어찌나 휘갈겨 써는지 한자를 좀 아는 사람조차 읽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전주한옥마을 국악의 집에는 ‘가락청(加樂廳)’이란 한자 현판이 덧붙여져 있다. ‘가락’ 다음 한자는 ‘청’자인 것 같은데, 실제 서체는 정자가 아니어서 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 전주전통술박물관 한자 간판 ‘館乙醙(관을수)’ 역시 서순도 역순인 데다 도무지 읽기 어렵게 기교를 부려 잘못된 현판의 본보기로 삼고 싶을 정도다. 유명 관광지마다 내걸린 한자 현판이 한학자나 서예가들이 자기과시 내지 생활 방편의 수단으로 고집한 것이 아닌지 유감이다. 이런 현판은 한옥마을 주요 관광객인 한글세대들을 문맹자로 만든다.
한글 현판도 문제가 발견된다. 현판은 기교를 부리지 말고 정자체로 표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캘리그라피(손으로 그린 문자)라며 제각각이다. 전주시 ‘효자다리’ 표지석 ‘효’자는 첫 획이 ‘ㅗ’가 아닌 ‘ㅅ’으로 표기되고, 장수휴게소 표지석의 ‘행복과 만남의 길’의 ‘길’자는 너무 째를 부려 한국어를 아는 외국인이 잘 못 읽는 것을 봤다.
현판은 한자로 써야 품위가 있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현판은 그 건물의 역사성과 유래를 함축한 글인데, 한자 현판은 한문을 터득하지 못한 이들을 그냥 스쳐 지나게 할 뿐이다. 알기 쉽게 쓴 현판은 목적지를 찾을 때 편리한 길잡이 기능을 한다. 그래서 세계 모든 나라는 자국 내 현판을 걸 때 국민들이 편리하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요즘 ‘殿雄大(전웅대)’ 현판을 100% 사용하던 사찰에서도 ‘큰법당’으로 바꿔 달기 시작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판에 한글을 살려 쓰는 노력은 가장 한국적인 한글의 의미를 살리는 일이다. 전주시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전주동물원의 어려운 현판 ‘麒麟苑(기린원)’을 필자의 제안으로 ‘전주동물원’으로 바꿔 달았다. 이런 개선은 작은 변화지만 큰 효과를 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 기회에 지방의회가 모든 공공시설 현판과 표지판 글자를 한글로 쓰고, 표준화한 한글 서체를 골라 읽기 쉽고, 간명하게 표기하는 것을 골자로 한 ‘현판 표기 조례’를 제정하는 게 어떨까 싶다. 마치 프랑스 정부가 1794년 법령에 “이법이 공포된 날로부터 공화국 영토의 어디서건 모든 공식적 표기는 프랑스어만을 사용한다”라는 프랑스어 사용을 적극적으로 선도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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