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경제가 너무 어렵다.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문을 닫고, 군산GM자동차가 폐쇄되었다. 현대자동차도 상용차가 팔리지 않아 재고가 넘치도록 쌓이고 있다. 작은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자영업하시는 분들의 한숨으로 땅이 꺼질 판이다. 청년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전북을 떠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지난 10월 24일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서가 체결되었다. 지방자치단체장, 군산대 총장, 군산상공회의소, 시민단체 대표, 5개 중소기업 대표와 노조 또는 노동자 대표, 한국노총 군산시지부와 민주노총군산시지부가 함께 서명했다.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이 참여한 것이다. 협약식이 성사되기까지는 군산대 교수 한 분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을 맡으셨는지 여쭈어봤다. 쌍용자동차사태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났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괴로워했고 군산GM자동차 폐쇄로 또 그런 사태가 일어날까봐 걱정이 되어 맡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서는 이러한 절박성을 바탕으로 많은 고심과 연구와 토론을 통한 합의의 산물이다. 그 내용도 꼼꼼히 들여다보면 하나 하나 깊은 고심을 읽을 수 있다. 협력사의 적정납품가 보장, 비정규직 최소화와 차별 해소 노력, 투명경영실현을 위한 정보공개, 협약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전기차클러스터상생협의회, 5년간 갈등조정중재특별위원회를 통한 사적조정과 중재, 전북 고용규모별 평균수준의 임금,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지향의 임금체계 도입, 가처분소득 향상 지원, 공동교섭을 통한 기준임금 결정과 개별교섭결정의 2단계 교섭 구조, 우리사주제 및 노동이사제 또는 이사회참관제, 공동근로복지기금 조성, 지역사회공헌사업, 지역인재(청년) 우선채용, 미래세대 및 지역사회 지원기금 조성, R&D 지원, 전기차 관련 벤처기업 양성, 지역 인력양성, 지자체 등 정부의 지원 등을 망라하고 있다. 오랜 사회적 쟁점이었던 내용들이다. 공통의 절박성을 바탕으로 어려운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 대해 매우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한다. 상호 신뢰에 바탕한 상생협약이라 할 만하다. 물론 노동계의 우려와 반대도 충분히 이유가 있는 우려이고 반대임을 깊이 새겨야 한다. 지금까지 상생이라는 것은 을의 희생만을 강요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중소기업중 하나는 노조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노조탄압 때문에 지금도 이슈가 되고 있다. 못된 생각과 관행을 버리고 협약서를 지켜나가는지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군산과 전북의 상황은 일자리가 너무 절박하다. 민주노총 군산시지부가 상부조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협약주체로 참여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협약을 지켜나가면서 상생의 산업생태계를 형성시켜낼 수 있는가이다. 이는 협약에 참여한 모든 주체들의 진심어린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당위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깊이 자각한다면 우여곡절이 있다 하더라도 군산이 희망의 근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군산만이 아닌 전북의 희망이 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사회적 관계모델, 지역발전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품을만한 요인들도 적지 않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컨소시엄이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GM처럼 꼬리 자르기 하듯이 먹튀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점이다. 회사의 운명을 모두 걸고 사업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국가적인 전기자동차 산업전환의 방향에 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R&D와 벤처 지원에 대한 사회적 설득력을 크게 가지고 있다. R&D와 벤처 부문은 많은 실패를 뒷받침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새만금종합개발계획을 현실화한다는 전제아래 새만금재생에너지 사업과 연동해서 향후 전기자동차 클러스터 구성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다. 명신컨소시엄을 주도하고 있는 명신의 경우 협약서의 정신에 부응하는 노사관계 형성과 경영을 해왔다는 평판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많은 우려를 불식하고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
처음 가보는 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여럿이 함께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