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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수의용담이야기](47)용담면 수천리





용담면 수천리(壽川里)엔 절터가 있었습니다. 진안군 용담면 수천리에 있던 절터로 남산의 서쪽 중턱에 자리하며, 주자천이 흘러 들어오는 가파른 기슭의 산전이 조선 중엽까지 있었던 절터라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재 용담댐으로 수몰됐습니다. 용담댐 수몰 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질 때 이 수천리 절터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수천리 절터에 대한 정확한 위치와 현황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에 걸쳐 조성된 고분들이 모여 있는 유적입니다. 용담댐 수몰 지구 내의 유적들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성격이 밝혀졌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의 고분들은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출토된 유물도 양질이어서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지방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용담대교를 건너 우측에 자리한 지류에 남쪽 사면부에 수천리 고분 떼가 있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에 대한 발굴 조사는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에 소재한 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발굴 조사는 수몰 지역 유적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보존 대책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학술 자료의 수집에 목적을 두고 추진되어, 1995년에서 2001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수천리 고분 떼에 대한 직접적인 발굴 조사는 1998년~1999년에 걸쳐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 53기, 고려·조선시대의 움무덤 37기, 조선시대 돌덧널무덤 5기, 조선시대 회곽 무덤 3기 등 98기의 무덤이 조사됐습니다.

주자천이 원장 마을 앞을 흐를 때는 수성천이라 했는데, 때문에 마을을 수천동 또는 수동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여기에서 수천리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곳은 조선 말 용담군 군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원장리를 병합, 진안군 용담면에 편입됐습니다. 원장·하거·송림 등의 마을이 속했습니다. 용담댐 건설로 수천리의 마을이 전부 수몰됐습니다. 수몰 이주민을 중심으로 망향의 동산 북쪽 기슭에 수천리란 이름의 마을을 새로 조성합니다. 수몰 이전 원장 숲거리 하마석이 있는 곳부터 소요대 앞까지는 1912년까지 장(場)이 서던 곳입니다. 금산·고산에서도 용담장을 보러 장꾼이 왔다고 합니다. 주천면·안천면·정천면·동향면에서 닷새 만에 한 번씩 만나던 것이 용담장이었습니다. 1912년 2월 7일에 수몰될 때까지 있던 장터로 자리를 옮겼으며, 장날은 3일과 8일이었습니다. 인삼을 비롯, 생활 필수품이 거래되던 용담장은 1985년까지 5일장이 섰습니다.

1995년 가을 수천리에서 어떤 아저찌가 청소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저녁 노을이 하늘을 곱게곱게 물들이자 나무 3그루가 강물에 자신을 빛추며 이쁘고 곱게 화장을 합니다. 고통의 무게를 견딜 줄 아는 굽은 나무는 자기의 그림자가 구부러지는 것을 결코 거부하지 않습니다. /글=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