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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자긍심과 공평의 정신 계승'

동학농민혁명 전봉준장군 탄생 164주년 기념행사

164송이 헌화 봉정의식

`광대1894' 특별공연 마련



 







고창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는 10일 오후 2시 고창문화의 전당에서 천안 전씨 및 기관단체, 군민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햇불을 향한 녹두의 꿈’ 전봉준장군탄생 제164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는 1985년 신용하교수의 고창 무장기포지 최초봉기에 따라 고창에서는 1994년부터 매년 생신의 기념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고창의 자긍심과 함께 자주와 공평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따라서 이날도 천안 전씨 종친 및 유족 회장과 함께 164송이 헌화 봉정의식 및 ‘광대1894’의 특별공연 등 대내외적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알리게 됐다.

이처럼 군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이며 최고 지도자 전봉준 장군의 출생지 및 가장 세력이 큰 손화중 포가 있던 곳으로 동학 농민혁명 시작이 가능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따라서 군은 동학농민혁명의 자주와 평등의 위대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선양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대표적인 유적지인 전봉준 장군 생가터를 비롯해 무장동학농민혁명기포지,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 손화중도소, 무장현 관아와 읍성, 고창읍성, 동학농민혁명군 진격로 등을 보존하고 있다.

아울러 1994년에 고창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를 발족시켜 초대 이기화 이사장을 시작으로 조정승, 정상기, 진남표, 이강수, 박우정, 진윤식 이사장에 이르고 있다.

현재 진윤식(76) 이사장은 해리면 이상동마을 출신으로 농민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기념사업회 이사로 입문해 총무를 거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도 2004년부터 13년간 지속된 국가적 기념일 지정을 놓고서 지리적, 학술적 가치는 전국 어느 곳보다 유리했지만 기록물 등의 부족으로 아픔도 겪어 왔다.

진 이사장은 “전봉준 장군을 비롯해 손화중, 김덕명, 김개남 등으로 이어진 고창 정읍의 동학농민혁명은 전무후무한 시대적 높은 가치와 광명사회로의 모태가 되고 있다”라고 평했다.

1894년 고부 봉기 이후 전봉준 장군은 고창 무장에 와서 양반이면서 동학에 능통한 손화중을 설득해 강경중과 함께 청송역에서 죽창을 무기로 사용, 구적산 아홉 골짜기 시냇물이 모여 법성포로 가는 길목의 넓은 구수냇가에 우람한 버드나무와 흰 모래사장에서 수천명이 모이게 됐다.

이들은 안핵사 이용태의 고부 만행으로 무장 기포가 일어나 3월 20일(무장 장날)에 집결 및 21일(해월법헌 생신)출발하는 역사적인 현장이 3.1만세운동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주도자였던 전 장군은 1855년 고창읍 당촌마을에서 아버지 전창혁과 어머니 광산 김씨의 아들로 태어나 자는 명숙, 호는 해몽, 관은 천안였다.

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은 오척단신의 작은 체구 때문에 녹두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아버지 전창혁이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으로 목숨을 잃게 되자 탐학에 울부짖던 백성들이 장두로 세워 고부봉기를 일으킨 결과 악핵사의 만행으로 고부가 불타고 도륙당했다.

따라서 전 장군과 동학농민 지도부는 1894년 3월 20일에 발상지 무장기포지에서 4천여명의 농민군으로 결성해 보국안민의 기치 아래 4대 강령 발표 및 조직적 투쟁을 전개하다가 마침내 1895년 41세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군민들은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이 농민층에 가혹한 수탈과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항거했으며 갑오개혁의 도화선이 되고 최초의 민중항쟁으로 평가 및 의향고창을 자긍하고 있다. /고창=안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