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여한 없다" 50년만에 누명 벗고 무죄
“죽어도 여한 없다" 50년만에 누명 벗고 무죄
  • 공현철 기자
  • 승인 2020.01.1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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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진호' 어부 6명 연평도 바다서 북한으로 납치
5개월 뒤 귀환… 경찰, 영장없이 구금 구타-물고문
허위자백, 반공법-수산업법위반 혐의로 징역 선고

■ `군산 납북어부' 재심

 

납북됐다가 돌아온 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제5공진호’ 어부 6명이 50여 년만에 누명을 벗었다.
앞서 해당 어부들은 재심사건 1심에서도 무죄를 받았지만 검찰이 “납북됐던 당시 이들이 법정에서 했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며 항소해 다시 법정에 서게 됐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1형사부는 14일 반공법 및 수산업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남정길(70)씨 등 6명에 대한 재심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적법한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부터 경찰서 등에 강제로 체포·구금됐고,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고문과 가혹 행위를 당한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당시 수집된 증거는 수사단계에서 가혹행위로 만들어져 증거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것만으로는 반공법위반을 적용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이 어떤 경위로 납북됐는지, 위치는 어디인지 등을 비롯해 군사 분계선 어디쯤을 넘어서 조업을 했는지 등 객관적인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법원 등에 따르면 공진호 선원이었던 남정길씨 등은 1967년 5월 선박을 타고 경기 연평도 인근 바다로 나갔다가 북한으로 납치됐다. 이들은 5개월 뒤인 10월 31일 풀려나 인천항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경찰은 “반국가단체인 북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했다”며 영장 없이 이들을 구금한 뒤 구타하고 물고문 등을 했다.
남씨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결국 허위자백을 했고, 1969년 2월 반공법과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동료들도 각각 징역 1년~3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 7월 남씨와 고인이 된 납북 어부 다섯명의 유족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 지난해 3월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7월 12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1부는 “남씨 등이 당시 고문을 받아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자백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한 자백은 증거로서 의미가 없다”며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과거사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추가 증거가 없는 한 상소하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깨고 5일 뒤인 7월 17일 “수사기관에서 한 자백은 가혹행위 탓에 증거로 쓸 수 없지만 공판정에서 한 진술은 자유롭게 진술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진술은 가혹행위로 만들어져 때문에 증거능력으로 볼 수 없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날 법정을 빠져나온 남씨는 “재판을 여러 번 받아서 정말 힘들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받아서 너무 기쁘고 후련하다”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울먹였다. 고인이 된 선원 5명의 유족들도 “늦었지만 간첩이라는 누명을 벗게 돼 다행이다”고 기뻐했다. /공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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