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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 이광열과 신석정시인의 예술혼이 스민 다가산방 편액

[옛자료에서 전북을 만나다] 전주 기린산방이 간직한 다가산방 편액
신석정이 1960년 이름지어준 다가산방 편액에 효산 이광열 붓글씨를 더하다
신석정, 1963년 가을 ‘송다가산방(頌多佳山房)’ 시를 짓다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6월 01일 08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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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산 이광열과 신석정시인의 예술혼이 엿보이는 '다가산방' 편액이 발견됐다. 신석정시인이 1960년 이름을 지어준 다가산방 편액에 효산 이광열 붓글씨를 더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시인이 1963년 가을 손수 '송다가산방(頌多佳山房)’ 시를 지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다가산방(多佳山房)' 편액은 효산(曉山) 이광열(1885∼1966)의 말년의 예서체 작품으로 1960년 음력 7월 상순에 만들었으며, 전주 서쪽의 다가산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현재 이 작품은 전주에서 기린산방을 운영하고 있는 배첩장(전북 62호) 변경환씨가 갖고 있다.

앞부분엔 ‘경자(庚子)’년으로 돼 있는 바 편액을 만든 것은 ‘지일경자(之日庚子) 조추(肇秋) 상한(上澣)’으로 읽어지는 바 1960년이다. 뒷부분 한문을 번역해보니 ‘전주의 서쪽 다가산 아래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대나무를 꺾어 물고기를 낚는 즐거움이 있었다. 주인이 은자(隱者)를 즐거워했을 따름이지 이름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었다’고 나온다.(全州之西看多佳山其下淸流採茹釣鮮爲起居之樂主人隱者不欲名爲 曉山幷題)

1960년대 전주 '다가산방'은 표구점의 이름으을 로 서울소바 자리에 있었다. 당시 다가산방은 임종석, 오병길, 서재영씨 등 3명이 일했다고 한다. “목공은 오병길, 표구는 서재영, 임종석씨는 대표로 영업을 했다”는 변배첩장의 설명이다.

“운보 김기창(1913~2001). 우향 박래현(1929~1976) 부부전을 앞두고 나에게 작품을 맡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가산방에 액자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김기창의 작품은 신석정씨가, 백래현선생의 작품은 진기풍씨가 나의 허락도 없이 그냥 가져갔지요. 아타깝게도 임종석씨는 연탄가스를 마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어요”

이치백 무성서원장은 이곳은 전주 최고의 표구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김기창, 박래현 등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이 모두 이곳을 거쳐 갔다.

임씨가 작고한 후 그의 부인이 이 편액을 갖고 있다가 벽당 윤명호씨가 보관하다가 최종적으로는 변배첩장이 소장하게 됐다. 변배첩장은 “임종석씨의 아들 임백순씨가 당시 모 방송국에서 일을 했는데 전화가 귀한 그 시절에 다가산방의 4280이란 전화번호를 가져갔다고 들었다”면서 “다가산방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신석정(1907~1974)시인이다”고 했다.

이 편액은 이광열이 나무의 전체적인 틀을 보고 여기에 맞추어 글씨를 써준 것으로 보인다. 한눈에 보아도 효산의 농익은 글씨와 함께 자연스러운 포치, 그리고 예술성이 절정에 이른 작품이다.‘다가(多佳)라는 말은 아름다움이 많다는 뜻으로 이곳에 올라 전주부성을 굽어보는 경치가 일품이어서 붙여졌으리라. 나무의 재질은 단단한 괴목이다. 부안 석정문학관 김복순 간사에게 전화를 해 앞서 말한 변배첩장의 말이 맞는지 확인했다. 석정전집에 '송다가산방(頌多佳山房)'이란 시가 발표했던 바, 바로 메일로 받을 수 있었다.



‘송다가산방(頌多佳山房)



다가산방 자린 비록 시정市井이어도

고려 이조에 묻혀 사는 그 뜻을

뉘라서 아는 이 있어 찾아와서 즐기리.



청자 파릇한 무늬 상감象嵌 한결 산드랍고

백자 무뚝뚝한 듯 아련히 두른 선이 곱다

추사秋史의 남긴 먹내음 더욱 향기로워라.



소연한 세상이사 석파난병石坡蘭屛으로 멀리하고

심전心田 월전月田 묵로墨鷺 운보雲甫 한자리 앉아

연연한 선과 빛깔로 주고받는 이야기 듣다.(1963. 초가을)’



‘산방(山房)’은 산촌 집의 방, 스님이 거처하는 산사(山寺)의 방을 말한다. 산속의 작은 집이 다가산 밑에 있으므로 그냥 집이 아니다. 산방(山房)으로 불러야 하는 까닭이다.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산방(山房)에 들어서면서부터 귀를 시원스레 적시기 시작해, 산방을 뒤로하고 사립을 나섰을 때까지 쉼 없이 들렸으리라. 깊은 산속, 그날 뻐꾸기는 푸른 계절을 노래하고 있었겠지만 왜 그런지 구슬프게만 들렸으리라.

흥선대원군이 남긴 자취 가운데 하나가 석파란(石坡蘭)이다. 대원군은 특히 난(蘭) 그림을 잘 그렸고, 그가 그린 난을 ‘석파란’이라고 불렀다. 석파(石坡)는 대원군의 호이다. 사군자 가운데 난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나온 말이 '우란(右蘭) 30년, 좌란(左蘭) 30년'이다. 오른쪽으로 잎이 뻗은 난을 그리는 데 30년이 걸리고, 그 다음에는 좌측의 난을 그리는 데 또 30년이 걸린다는 의미이다. 60년 난 그림 공부에서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가 있으니 바로 ‘삼전지묘’(三轉之妙)의 기법이다. 난 잎이 세 번 자연스럽게 휘어져 돌아가는 모습을 붓으로 묘사하는 기법인 바, 마음에 욕심이 없어야만 이 삼전지묘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석파란의 특징은 이 삼전지묘에 있다. 삼전지묘가 안되면 “난 잎이 아니라 풀 잎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심전(心田)은 안중식, 월전(月田)은 장우성, 묵로(墨鷺)는 이용우, 운보(雲甫)는 김기창화백을 말한다. 예로부터 전주엔 ‘부성삼화(府城三花)’가 있었다. 이는 전주의 아름다운 꽃 3가지로, 동고산(승암산)의 진달래, 다가봉의 입하화(立夏花, 입하는 절기)의 이팝나무꽃, 덕진지당의 연화(蓮花, 연꽃)를 말한다. 다가산의 여름이 시작됐다. 이팝나무가 신록으로 무성하다. 호반새는 호로로로롱 호로로로롱 하고 운다. 길고 긴 하루가 순간이었다. 다가산방 편액에서 1960년의 효산 이광열과 신석정 시인을 통해 전주의 도도한 예맥(藝脈)을 만났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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