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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서 소치 허련<小癡 許鍊>의 작품 만나다

12월 30일까지 추사 김정희가 극찬한 소치 허련 작품 선보여
산수도 병풍, 화첩, 서첩 등 60여점 다양한 작품세계 `한눈에'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9월 27일 14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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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가 극찬한 소치 허련의 작품을 전주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조선의 회화, 호남 한국화의 뿌리를 찾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에이옥션 전시장에서 '남종화의 거장 소치 허련'특별전으로 열린다.

작품은 소치 혀련의 문인화, 산수도 병풍, 화첩, 서첩 등 60여점이 전시되는 등 다양한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조선시대 가장 유명했던 서예가는 단연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일 것이다. 그런 추사가 가장 아끼던 제자가 있었으니, 바로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9~1892)이다. 허련의 선대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사대부가의 하나로 꼽히는 가문이었으나 진도로 이주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였지만 변변한 교재나 스승도 없어 체계적인 그림교육을 받지 못핶다.

28세 때에 해남 연동의 녹우당(綠雨堂)을 찾아가 《공재화첩(恭齋畵帖)》을 빌려 모사하며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교재가 된 셈인데, 해남 윤씨가의 가보를 빌리게 된 것은 대선사 초의(草衣)의 배려와 도움이 컸다.

1839년 허련은 초의선사의 추천으로 김정희에게 그림을 보이고 허련의 그림을 칭찬하며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여 자신의 집에서 숙식을 제공하며 허련의 생애와 예술은 김정희의 절대적 영향을 준다. 소치(小痴)라는 호는 중국의 대가 대치(大痴) 황공망에 견줘도 손색이 없으니 조선의 황공망이 되라는 뜻으로 추사가 직접 지어준 호 이다.

1856년 추사 김정희가 사망하자 허련은 낙심하여 전국을 떠돌며 방랑생활을 하다가 이듬해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연못을 만들고 배롱나무를 심고 집을 지어 운림산방이라 부르며 소박한 삶을 살면서 오로지 창작활동에만 매진하게 된다.

운림산방(雲林山房)이란 첨절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피어올라 구름 숲을 이룬모습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허련은 이렇게 운림산방에서 노년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남종화를 토대로 실경을 시도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게 된다. 그 후 운림산방의 화맥은 그 후손들에게 이러져 지금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허련은 김정희에 의해 선도된 문인화의 사살과 경향을 익히고 실행해 나간 화가이다. 남종 문인화(남종화)란 그림을 그리는 선비, 곹 문인이 그린 그림을 뜻하는 것으로, 그림에 사상과 철학 등 내면서계를 중시하는 그림으로, 그림과 시를 곁들여 함께 한 화폭에 담아냈다. 허련의 작품은 대체로 수묵으로 그린 산수화 · 사군자 · 묵모란 등이 주류를 이룬다. 산수화의 경우 남종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사군자나 묵모란은 소방하게 그린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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