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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미래] 복원된 전라감영, 호남의 관광 명소로

“전주의 출판문화, 판소리 등 함께 어우러져
찾고 싶은 역사문화콘텐츠 운영해야”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10월 19일 13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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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섭(전주시의회 문화경제위원장)



인구에 회자 되는 말 중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귓가에 다가온다. 지난 역사의 잘못은 되풀이하지 말고 본받을 수 있는 좋은 것은 계승 발전시키라는 교훈이리라. 70년대 산업화 밀린 우리 전라북도는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물산이 풍부하고 호남을 대표했다. 호남 즉 전라도라는 지명은, 1018년 (고려 현종 9년) 전주와 나주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했다. 도라고 하는 제도는 고려 말 1388년 (창왕 원년) 안렴사제가 2품의 도관찰출척사로 개편돼 일도를 총괄하면서부터이고, 최초의 전라감사는 고려 말의 최유경이다.

오늘날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를 담당했던 전라감사(전라도 관찰사)는 일도를 총괄하는 종2품의 관리로 지금의 도지사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 육조판서가 정2품이고, 그 아래 육조 참판과 같은 종2품으로 감사는 직급상으로 참판 급이었지만, 일도의 장관으로서 행정, 군사, 사법을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소유했다. 특히 전라감영은 임진왜란 후 감영 소재지를 이전한 경상감영이나 충청감영과 달리 조선왕조 5백여 년 내내 전주에 두고 전라도의 치소(治所)이자 수부(首府)이며 호남의 상징이었다.



우리 호남은,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용사지란(龍蛇之亂)’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말하길, “나라의 군량을 모두 호남에 의지하고 있는데 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國家軍儲 皆靠湖南 若無湖南 是無國家也 국가군저 개고호남 약무호남 시무국가야)”라고 할 정도로 중요했었다.

그런 호남의 통치 관서인 전라감영은, 척양척왜를 외치던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과 전라감사 김학진 사이에 전주화약을 체결하고, 전라도 일대의 폐정개혁을 담당하는 집강소를 각 군현에 설치하고 그 개혁의 중심기구인 대도소를 전주 객사와 감영에 설치한 최초의 민선 자치 중심지가 있던 곳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한 말처럼, 우리 조상들의 전통과 역사는 이제 지역을 먹여 살리는 산업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의 두뇌 싸움도 치열하다. 동학혁명 관련 사업이 그렇고 조선왕조실록도 마찬가지다. 우리 전라도의 중심이었고 호남의 심장부였던 전라감영은, 1910년 일제의 강제합병으로 도청사로 쓰이다가 1921년 전라감영 자리에 도청사를 신축하였으나 6·25 때인 1951년 선화당과 도청이 전소되었다. 1952년 신축사용, 2005년 신도심으로 도청이 이전되고 2015년 구 도청사가 철거되었다. 그리고 2017년 11월 ‘전라감영 재창조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난 10월 7일 1단계 복원공사 준공식이 이루어졌다. 지난 역사를 잊지 않고 호남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제 복원된 전라감영이 전라도 전통문화와 역사의 중심이자 민중의식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사실, 전북과 전주의 명소로 자리매김하여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유일본을 지켜낸 성지 전라북도, 최초의 농민 권력 기구가 설치된 곳으로써 전주의 출판문화, 판소리 등이 함께 어우러져 찾고 싶은 역사문화콘텐츠를 운영한다면, 구도심 개발과 전통문화 관광의 중심지라는 두 개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게 되기를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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