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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길목] 아내의 빈자리

“예부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던 복장은
사회적인 약속이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미학”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11월 25일 13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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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이른 새벽부터 거실에서 다람쥐마냥 달가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늦가을 단잠 깨어놓았다.

아내가 월출산으로 산행 떠날 준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종종 이렇게 성당 신자들과 함께 새벽기도 나가듯 등산 다녀오곤 했다.

산에 오른 다음 날이면 온몸 쑤신다고 파스냄새 풀풀 풍기면서도 등산 약속 마다하지 않았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잘 다녀와”

커다란 배낭 등에 붙이고 서둘러 집 나서는 아내 배웅한 뒤 조용해진 거실에서 라디오 틀었다.

“어제 0시 기준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54 명 발생했습니다. 일주일만에 세 자리 숫자로 기록되었습니다. 병원과 요양원 체육시설에서 집단감염으로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매일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코로나 감염소식이 오늘도 예외없이 그 긴박했던 현장을 보도하고 있었다. 앵커 후평 한마디에 전 국민은 긴장초조감에 희비가 교차되었다. 언제쯤 코로나상황 관련뉴스가 사라질는지... 라디오의 이런 저런 사연들 청취하며 반려견 하니와 놀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관장님, 오늘 11시에 모 교회 입당식 있는 것 아시죠?”

“예, 알고 있어요, 챙겨줘서 고마워요”

전화 끊고 외출준비 하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나의 외출 복장을 매일 안방 옷걸이에 챙겨 놓는다. 오늘도 습관처럼 옷걸이에 손 뻗었다. 그러나 손에 잡힌 것은 뼈만 앙상한 옷걸이 뿐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꼭두 새벽부터 부산하던 아내가 나의 일과 깜빡 잊은 채 차 시간 놓칠세라 황급히 산행 떠난 것이다.

행사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와이셔츠와 넥타이 고를 수가 없었다. 양복이야 단벌 신사인지라 고를 일이 없었지만 문제는 와이셔츠와 넥타이였다. 다양한 색상 와이셔츠와 여러개 넥타이 중 어떤 걸 골라야 할 지 무척 난감했다. 자칫 잘못 했다간 파란 와이셔츠에 붉은 넥타이 같은 볼쌍 사나운 차림이 될 판국이었다. 하지만 표식도 냄새도 없는 색깔 별 수 있겠는가. 도박꾼이 된 심정으로 그저 손에 닿는 대로 골라 잡았다.

잠시 후 콜택시기사로부터 차 대기시켜 놓았으니 천천히 내려오라는 손전화가 걸려왔다. 옷매무새 자신없게 가다듬으며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갔다.

콜택시기사가 다가와 인사치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넥타이가 참 멋있습니다. 사모님이 골라주신 모양이죠?”

“……”

기사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칭찬인지 비아냥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 되물었다.

“기사님, 제 넥타이가 정말 멋있어요?”

“네, 의원님”

대답하는 기사 말끝이 의심스러웠다. 다시 한번 물었다.

“지금 제 넥타이 색이 뭐예요?”

“……”

한동안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빛 고운 색이었다면 대답 안 해 줄 리 없었다. 더 이상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등줄기에서 넥타이처럼 길쭉한 식은땀이 한일자 그리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행사장에 가서도 자꾸만 복장에 신경 쓰였다. 구색에 안 맞는 차림이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앉아 있는 자리가 불편하기만 했다. 몇몇 지인들과 인사만 겨우 나눈 뒤 행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옷깃 여미며 황급히 행사장 떠났다. 타오르는 사하라 벌판에도 겁 안내던 내가 넥타이 조각 하나에 잔뜩 의기소침해져서 비에 젖은 새앙쥐 마냥 도망 나온 신세가 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복장 또한 예부터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해 왔다. 인간의 복장은 공작새 날개처럼 단순히 아름다움 뽐내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약속이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미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각장애인은 참 불편하다. 철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모임성격에 따라 넥타이며 와이셔츠며 구두나 모자 등에 적절하게 신경 써주어야 하는데 사실 양말 하나 짝 맞춰 신기도 수월치 않다. 그래서 우리 시각장애인들은 가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으로 삐에로가 된 것 마냥 주위의 굴절된 시선 받곤 한다. 이런 일들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종종 대인기피증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

아! 아내의 빈 자리가 이렇게 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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