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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창]전북혁신도시의 초기철기문화,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1년 11월 25일 13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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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전북대학교박물관, 문학박사)







전북혁신도시는 만경강 이남의 신도시 건설을 대표한다. 여기에 만성지구 개발사업이 가세하면서 전주 서부지역은 미래 성장을 위한 핫플래이스로 재편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뉴타운(new town) 개발은 시대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전주·완주뿐만 아니라 전북의 도시 가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평가다.

그런데 정작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전북혁신도시에서 발굴조사된 청동기·철기문화의 문화재적 가치가 그것이다. 전국에서 청동기와 철기가 이렇게 다량으로 쏟아진 예가 없다. 특히 완주 갈동 출토 거푸집은 고고학계에서 백년돌(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아이돌)쯤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토위치, 출토 상태, 공반유물 등이 완벽하게 밝혀진 최초의 청동기 제작 관련 고고학적 자료였기 때문이다. 이 거푸집을 비롯하여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각각 보물 제2033호, 보물 제2034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완주 신풍 유적에서는 80여 기에 달하는 대규모의 무덤들이 특정한 무리[群]을 이루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또 한 번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그동안 학술대회와 특별전시가 연이어 이어졌다. 그러나 전시관이나 박물관을 짓자는 정책이나 움직임은 눈 씼고 둘러봐도 없다. 발굴조사된 지 신풍 유적은 12년, 갈동 유적은 18년이 지났다. 길바닥에 황금덩어리가 널려 있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전북혁신도시의 문화유산은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쯤 매우 강성했던 마한 집단의 존재를 말해준다. 다만 기록이나 문자가 발굴되지 않아 그들의 분명한 정체성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기원전 2세기대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량의 청동기와 철기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변혁적인 또는 획기가 될 만한 사건과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준왕의 남천과 연결짓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기원전 2세기 초에 고조선의 준왕은 위만 세력에 쫒겨 바다를 건너 도망하는 신세가 되었고, 한(韓)의 땅으로 들어가 한왕(韓王)이 되었다는 기록에 의거한 것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삼국유사'에 나오는 기록이다. 만약 이러한 기록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마한 역사에서 최전성기의 물질문화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전북혁신도시에서 조사된 청동기·철기 유물들과 유적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원전 2~1세를 전후하는 마한의 역사를 대표한다. 둘째, 기원전 2세기 초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준왕의 남천을 고증할 수도 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익산을 경유했거나 황방산 일원에 자리를 잡은 준왕 집단과 토착 마한세력의 정치체를 구명할 수 있는 전무후무한 고고학적 자료라는 데 무게를 실어준다. 셋째, 당시 마한세력이 중국이나 왜와 대외 교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들이 발견됨으로써 마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역동성을 복원할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값진 지역의 문화유산이 우리들이 매일 지나치고 있는 길가 옆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인가?

우리는 왜 전북혁신도시에서 출토된 청동기·철기 유물에 더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가? 2200년 전 전주·완주 역사에서 중시조(中始祖)격에 해당하는 혁혁한 존재를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까지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안타까워하다가 눈을 감을 찰나에 중시조를 찾게 된 기쁨이랄까? 그런데 그 정체가 왕의 아들이었다면? 또는 그들과 서로 연관되는 뭔가 큰 정치·사회적 움직임의 결과였다면? 최소한 고관대작임에는 분명하므로 얼마나 기쁘겠는가?

역사에서 실재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문패도, 비석도 없는 상황에서 존재를 특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고고학적 정황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이러한 실마리는 기원전 2세기를 전후하는 시기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연구해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이 동력을 잘 살려낸다면, 전주·완주의 역사성은 지금보다 훨씬 윤택해질 것은 자명하다.

전북혁신도시 인근에 있는 국립전주박물관은 이제 전북의 역사보다는 조선시대 선비문화에 집중하고 있다. 전주역사박물관은 전주의 통사를 담기에도 부족한 실정이다. 혁신도시 일원에 청동기·철기문화를 집중적으로 조사·연구하고 전시·교육할 수 있는 전문 박물관이 건립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호남고속도로에서 훤히 잘 보이는 곳에 2200년 전 마한의 역사가 활짝 꽃피우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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