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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불태우고 불타고 재가 되었는데도


기사 작성:  이종근
- 2021년 11월 28일 13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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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곤(칼럼니스트)







지난주 역사와 진실과 현실을 밝혀 쓰는 신문들이 아침신문에 일제히 전두환의 사망소식을 대문짝으로 장식해 내보냈다. 그리고 KBS 방송에서는 5.18 부상자 중 후유증으로 인한 극단적이 선택을 한사람이 4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지금 언론사에서 뉴스를 전하고 일하는 세대는 그 당시엔 초등생이었을까?

나는 그 80년대 슬픈 광주를 아직 부끄럽게도 가보지 못했다.그러나 그때도 나는 광화문에서 살았고 서울에서 일터가 외국인을 많이 상대했던 직장에서 그때의 정치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언론은 편집국에 상주한 보안사 군인들에 의해서 매일 내려오는 보도지침으로 신문을 꾸미고 있었다. 같은 사건을 기본적 표현으로 해 쓸 수 가 없었다. 그리고 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동이일보 해직기자들이 모여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게 되었다. 종교계에는 천주교에서 인권신문을 만들겠다고 장기수 신영복의 필체로 제호까지 준비해놓고 결국은 종교 신문으로 떨어져버렸다.

당시 아침신문이 4개였는데, 나에게는 다행히 5개의 조간을 읽을 수 있었다.4개의 한국 신문은 같은 사건을 한 세 줄 정도로 쓰여 졌다. 이 신문들을 확인 한 다음 나는 미군의 '성조지'에 사진과 함께 올려 진 같은 사건의 서울발 AP UPI 로이터 통신 기사를 매일아침 찾아 읽었다. 데모현장에서도 한국방송 기자들의 방송장비는 시위대의 투척물에 의해 파손되기 일수 였다. 왜냐면 보도가 나가진 않고 그 화면이 군인들과 경찰에 넘겨져 반정부 혐의로 찍혀서 '서빙고분실'에 끌려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신문에는 광주에서 민간인 17명이 사망했다고 보도 됐지만 외신들은 2000명 이상 사상자가 된다고 썼다. 또 12.12로 정권을 거머쥔 전두환의 친구들을 시즈파위(Seize power)라고 표현했다. 그런 연유였던지 그 이후에 한국말의 표현으로 '싹쓸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게 된다. 그리고 당시 광주의 상황을 미국의 시사주간지에서는 '피의 9일(Bloody nine days)'라 표현했다. 또한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기자는 2개 면의 흑백신문 기사를 들고 와서 가택연금 상태인 DJ의 동교동 집을 방문하여 독점취재의 열을 올리고 있었다.

광화문과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서울성지이다. 그곳에서 민주화를 시위 후 아니면 평일에도 구호를 외치면서 몸에 석를 뿌리고 분신을 하였다. 그러면 경찰은 성명미상의 한 청년이 분신 했다고 보고하면 곧바로 경호실에 보고되고 경호원 귓속 무선리시버에서 "하나 또 불탓습니다."고 아무런 느낌 없이 윗선에 보고한다. 교모하게도 5공 청문회에 앉아있던 유력한 당시 두 야당 중진의원들은 뒷돈을 받고 사건을 슬슬 비껴나다 들통이나 정치생명이 끝났다.

​적반하장이란 말이 있다. 얼마나 나쁜 머리기술일까 야당 정치세력을 향해 "광주민주화 당시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되레 자기들은 군에서 피 흘리며 나라를 지켰다고 말한다. 너희들은 사회에서 데모만 했지 않느냐 하고 역이용하던 뻔뻔함으로 응수하는 버릇을 키워왔다.

지금 나는 그 언론사들에게 그 당시 처참했던 독재자들의 행위를 다 잊었는지 묻고 싶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큰 죄악에 대해 죽기 전에 후회하거나 용서를 빌고 사후 죗값을 생각해서, 그리고 자기 자손을 봐서도 걱정이 되는데...

어찌 자기가 보는 앞에서 60명 이상의 특전사 군인들이, 시계불량으로 출동해서는 안 될 헬기를 출동시켜 몰살을 해도 백담사에 세배 온 고교후배들이 교통사고로 40여명이 또 세상을 떠나갔는데도 그렇게 돌처럼 강한 그의 심장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참 알 수가 없었다.

85년, 광주에서 대학을 다니던 완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아들이 누나 집에 왔다. 그리고 누나에게 장학금을 타왔다며 내놓고 하는 말이 공부 열심히 하던 친구들은 죽고 자기에게 이런 기회가 온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으나'모진 놈 옆에 있으면 벼락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귀한 자식들을 무슨 연유로 그렇게 휴지조각처럼 버리게 할 수 있을까. 장관들의 원혼들을 외국에 두고 왔는데도 반성은커녕 잘못이 없다고 한다. 아직도 그 억눌렸던 언론사들이 아직도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지, 어떻게 역사에 맡겨두라고 할 수 있는지 그 언론사들도 그때의 신문 파일을 불태워 재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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