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제주도 판관으로 부임해 '밭담'을 쌓도록 한 지포 김구(金坵·1211~1278)의&;출신지인&;부안에&;제주&;화산석을&;활용한&;돌담이&;조성될&;전망이다. 김정기 전북도의원(더불어민주당, 부안)은 "최근 제주도를 방문해 이같은 협의를 맞춰 11월 전라유학진흥원 준공에 맞춰 제주 돌담 조성 기념식도 치르자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현무암 반출 절차도 신속히 진행키로 했다.
제주 밭담의 연원을 좇아가보면 고려시대 문신인 문정공 지포 김구가 등장한다. 그는 부안이 낳은 역사상 최고(最古)의 인물이자, 부안에서 최초로 문정(文貞)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진 인물로 부안김씨들의 중시조이다. 그에 대한 행적은 '고려사'에 20여 회나 나타나며 '고려사절요'에도 8회나 보인다. '세종실록'의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사략', '동국통감 '등 역사·지리서에 그의 공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김구는 22세 때 예부시(고려시대 과거의 최종시험)에 합격하며 당대 제1의 문호였던 이규보와 최자의 천거로 관직생활을 시작한다. 24세 때인 1234년(고종21)에 제주판관으로 임명되어 6년을 제주에서 보내면서 풍속을 규찰하고 단속하는데 진력한다.
‘탐라지’ 풍속편엔 “김구가 판관이 되었을 때에, 백성에게 고통을 느끼는 바를 물어서 돌을 모아 담을 쌓아 경계를 만드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주하면 돌과 바람이란 말도 이때 나온 말이다. 제주 선인들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강한 바람에 대비한 생활이 부득이했다. 바람을 극복하기 위해 경작 과정에서 나온 돌들을 담처럼 쌓기 시작했다. 농경지에서 먼 곳으로 옮기기보다는 그 주위에 쌓는 편이 훨씬 쉽고 노동력도 덜 들어가 농경과 밭담은 자연스레 연결될 수 있었다. '증보탐라지'에서도 밭담의 방풍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당시 그는 힘없는 백성들이 힘 있는 토호세력들에게 땅을 빼앗기는 광경을 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백성의 입장에서 돌담을 쌓고 치안과 국방에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후에 제주도민들은 이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아 제주시 삼양동에 위치한 제주민속박물관에 ‘돌문화의 은인 판관 김구 선생 공적비’를 건립하고 면면히 추숭하고 있으며 제주돌문화공원에 별도의 기념공간과 함께 현재 제주 애월읍 설촌마을엔 제주 특유의 현무암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 했다.
제주밭담은 국가중요농업유산이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그의 사후 700여년이 흐른 지금도 전북과 제주 사이에는 밭담을 매개로 한 왕래가 이어지고 있다. 돌담은 김구의 선정(善政)은 물론 전북과 제주의 역사적 인연을 상징한다. 마침 선생을 배향하는 부안의 도동서원터가 있는 곳에 전라유학진흥원 건립 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이 자리에 상징적으로 제주 화산석을 활용한 돌담을 조성해놓는다면 선양의 의미와 함께 전북과 제주도의 역사적 관계 복원, 그리고 전라유학진흥원의 상징성을 높이는 복합적인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포 김구’선생을 시작으로 특별자치도인 전북과 제주의 교류와 그 미래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데 첫 발을 내딛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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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안에 제주밭담 조성은 잘한 일
미래 새로운 청사진 그리며 전라유학진흥원의 상징성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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