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06월30일 15:45 회원가입 Log in 카카오톡 채널 추가 버튼
IMG-LOGO

[사설] 익산 백제 왕도의 역사 정체성 확보해야

익산 미륵산성서 백제시대 추정 저수조·목간 출토
미륵산성에서 백제 유구가 확인된 것은 처음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6월 08일 14시47분

익산 미륵산성에서 사비 백제(538~660년)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조와 목간이 출토됐다. 목간은 백제 사비기로 추정할 수 있는 간지(干支)명이 적혀있어 미륵산성의 성격과 축조 시기를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간이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표면을 가공하고 문자나 그림을 남긴 나무 조각을 말한다.

지난해부터 전북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미륵산성 정상부인 장군봉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익산시는 “미륵산성에서 백제 유구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1990년부터 이뤄진 3차례 조사에서 통일신라 이후로 판단되는 문지(동문지, 남문지)와 치성을 비롯해 건물지, 집수시설 등은 조사됐지만, 이번 조사 이전에는 백제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었다.

익산 미륵산성에서 백제 사비기(538~660년)에 만들어진 저수조와 목간이 출토됐다. 특히 목간에는 사비기로 추정할 수 있는 간지(干支)명이 적혀 있어 미륵산성 축조와 운영 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주목된다.

익산 미륵산성은 '기준성(箕準城)'으로도 불리며, 해발 430m 미륵산 정상을 중심으로 사면과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1,822m에 달한다. 1990년부터 세 차례 걸쳐 이뤄진 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이후로 판단되는 문지(동문지·남문지)와 치성(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찰하고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 건물지, 집수시설 등은 발견됐으나 백제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조사는 장군봉 아래에서 확인된 성토대지층과 이를 파고 조성된 석축저수조에 대해 전면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원형 석축저수조는 위치상 미륵산 정상부에 가까워 수원(水原)의 확보가 어려운 점을 감안, 이중으로 석축, 나뭇잎, 삿자리(갈대를 여러 가닥으로 줄지어 매거나 묶어서 만든 자리), 고운 점토 등으로 최대한 물을 가둘 수 있도록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목간, 가공목, 건축부재 등 다량의 목재 유물도 발견됐다. 목간엔 '병신년정월기(丙申年正月其)'라는 간지명이 적혀 있어 미륵산성 축조·운영 시기를 밝힐 수 있는 주요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익산에는 네 번의 왕도답게 수도를 의미하는 지명들이 아주 많다. 마한 54소국 중에서 고창의 모로비리국과 익산의 건마국, 금마는 지명에 바로 수도라는 우리말 뜻이 담겨있다. 건마국, 익산군, 금마의 진산인 건자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흐르는 옥룡천, 부상천, 왕궁, 제석사, 대관사, 고도리, 견우직녀상, 춘포, 봄개 등 주위지명이 왕도를 상징하는 고품격 인문학 지명으로 설계되어 있다.

미륵산 주변 지명인 기양과 삼기의 기자와도 연관된다. 건자산을 진산으로 동쪽에는 부상천, 서쪽에는 옥룡천이 왕궁뜰을 감싼다. 부상은 동양의 이상향인 해뜨는 동쪽바다, 신비의 뽕나무를 상징한다. 이번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익산 미륵산성의 정비와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익산 백제왕도의 역사 정체성 확보와 체계적인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Leave a Comment


카카오톡 로그인을 통해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