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독자투고] 한 잔의 냉수가 전하는 따뜻함

기사 작성: 안병철 - 2025년 08월 30일 12시59분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파출소 문이 열리며 한 젊은 남성이 들어왔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할머니 한 분이 교차로에서 손을 들어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고 하시더라고요. 치매가 있으신 것 같아 위험해 보여서 모시고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젊은이는 곧장 파출소 정수기 앞으로 가더니 냉수 한 컵을 받았다. 아직 차에서 기다리고 계신 할머니를 위해서였다. 처음 보는 어르신이고, 자신의 소중한 출근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의 마음은 오직 할머니의 안위에 집중되어 있었다.

90세가 넘으신 할머니는 귀가 많이 어두우셨지만 정신은 맑으셨다.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사정을 알아보니, 기르시는 고추밭에 뿌릴 농약을 사러 버스를 타고 오시던 중 잘못 내리신 것이었다. 덥고 힘든 날씨에 낯선 곳에서 당황하신 할머니에게, 그 젊은이는 그야말로 구원의 손길이었던 셈이다.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우리는 먼저 농약상에 들러 할머니가 필요로 하시던 농약을 구입한 뒤, 할머니를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다. 젊은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을 때 그의 대답이 더욱 인상 깊었다.

"할머니 집을 찾아서 다행이에요."

마치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품격을 느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그의 태도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요즘 각박한 세상이라고들 한다. 남의 일에 관심 갖기를 꺼려하고, 번거로운 일은 피하려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젊은이는 달랐다. 위험에 처한 어르신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으로 임했던 것이다.

한 잔의 냉수, 그 작은 배려가 할머니의 갈증을 달래주었을 뿐만 아니라 경찰관인 나에게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선물해주었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을 것이다. 작은 관심 하나가 만드는 세상의 변화, 그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하루였다.

오늘도 누군가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손을 내밀고 있을 것이다. 그 작은 선행들이 모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믿는다./이주연 경사(고창서 해리파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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