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지역의 재발견]향교, 과거의 유물이 아닌 오늘의 질문

- 충효가 사라진 패륜의 시대, 향교가 던지는 물음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9월 02일 16시55분

요즘 뉴스를 보면 가족 간 패륜 사건,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범죄, 청산되지 않은 친일문제와 역사 왜곡 등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이 문제들의 공통된 뿌리는 무엇일까.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성찰해보며 나는 오늘 충(忠)과 효(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요즘 시대에 충효라니 이 얼마나 고루한가 싶지만 답을 알기 어려울땐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가족 안에서의 존중이 사라지고, 공동체를 향한 책임이 약해진 현실은 충과 효라는 기본 윤리가 흔들린 징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근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충은 공동체와 사회를 향해 성심을 다하는 태도이고, 효는 부모와 가족을 향한 공경과 책임이다. 그러나 효의 약화는 가정에서, 충의 약화는 사회에서 불안과 갈등을 낳았다. 가족 해체, 노인 빈곤, 세대 갈등은 효가 무너진 자리에서 생겨난 그림자이며, 부패와 불신, 무책임, 혐오는 충이 사라진 사회가 보여주는 민낯이다. 최근 패륜 범죄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부모를 존중하기는커녕 생명을 위협하며 반대로 부모 역시 자식을 성심껏 돌보지않고 방임한다. 세대 간 신뢰가 무너지고, 공동체를 향한 책임의식은 약해졌다. 효가 사라진 가정은 안전한 울타리를 잃고, 충이 사라진 사회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각자도생의 공간으로 전락하며 심지어는 서로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목적도 맥락도 불분명한 혐오를 위한 혐오 사회. 끔찍하다.

오래전부터 역사는 충과 효를 끊임없이 교육하고 주입해 왔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굳이 반복적인 가르침이 필요했을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가까운 이를 위하는 정은 본능일 수 있으나 그것을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효와 충으로 확장하려면 꾸준한 학습과 제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패륜이나 사회적 불신은 어쩌면 이러한 공동체적 교육 전통이 사라진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그 가치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는다. 공동체 교육의 시작이 되는 가정에서는 그저 금쪽같은 내새끼로 친구같은 부모로 부모자식간의 격차를 없애 예를 배우지 못하고, 학교에서 예를 가르치려 하면 교육은 학대로 둔갑된다. (물론 진짜 학대가 이루어지던 시절도 있긴 했다.)

바로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향교가 존재했다. 향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교육 기관이다. 단순히 유학을 가르치던 곳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만으로는 부족한 덕목을 길러내는 사회적 장치였다. 지역의 청년들이 모여 《논어》와 《효경》 같은 경전을 통해 부모를 공경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사회를 위해 성심을 다하는 길을 익혔다. 그렇게 향교의 강학은 지식 습득을 넘어, 한 인간이 공동체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국가 유산으로서 향교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과거의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윤리적 기반을 상기시키는 상징적 공간으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향교는 그 자체로 조선시대 교육 제도의 흔적이자 공동체가 지켜온 가치의 산실이므로, 오늘날 인성 교육이나 세대 간 소통 프로그램, 지역 공동체 활동의 장으로 활용한다면, 향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 있는 유산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불신과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작은 실마리를 찾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조선시대에 널리 읽힌 삼강행실도에는 완주 고산 인물 유석진의 일화가 나온다. 일명 ‘석진단지’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는 유석진이 병환에 든 아버지를 위해 손가락을 잘라 봉양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진짜 먹였다기보다 그만큼 부모를 위해 자식이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일화일 것이다. 그것은 곧 이 공동체에 대한 성심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산읍내에는 이러한 유석진을 기리고자 그의 이야기를 담은 비석이 있으며, 가까운 곳에 고산향교가 위치한다. 결국 향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던 공간이었다. 오늘도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향교는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에 여전히 말을 건네는 국가유산이다. 가까운 향교를 찾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충과 효의 가치를 되새겨 본다면, 나와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북동부문화유산돌봄센터는 국가유산청과 전북특별자치도청의 지원을 받아 문화유산돌봄사업을 진행하며, 도내 동부권역 8개지역의 국가유산을 관리한다. 정기적인 상태 모니터링과 전문 모니터링, 경미한 수리와 일상적 관리를 통해 예방보존하고 있으며, 국가유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존 및 관람환경을 개선한다./최유지(전북동부문화유산돌봄센터 모니터링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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