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금요수필] 나무가 되고 싶다

윤철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9월 04일 10시06분

우리 동네 공원 초입에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여름날에는 무성한 잎으로 초록 세상을 펼쳐놓고, 겨울에는 잎 하나 없이 추상적인 선으로 하늘을 가린다. 철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자신의 자리 지킴은 늘 한결같다. 나는 자주 그 앞을 지나다니며, 때로는 그늘에 앉아 쉼을 얻곤 한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고요해지고 싶을 땐 그 나무를 찾는다. 나무 밑동을 따라 둥그렇게 만들어진 벤치는 명상의 명당이 된다. 그 나무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감만으로도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무런 소리 없이 침묵으로 내 마음을 일깨운다. 깊은 고요함이 마음속 번민들을 한 줄 한 줄 가라앉히는 것을 느낀다.

나는 너무 많은 말을 하며 살아왔다. 해야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 하고 나서 후회되는 말들. 나무처럼 그저 말없이 서 있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말이 많을수록 마음은 더 어지럽고, 고요한 평화를 찾기가 어렵다.

나무는 순리를 따른다. 봄이면 새순을 틔우고, 여름이면 햇살을 품고 자라며, 가을엔 열매를 내어놓는다. 겨울이면 아낌없이 벗는다. 나무는 무엇을 움켜잡지 않는다. 욕심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그저 자연의 흐름을 따르며 비움으로, 새로움을 채운다. 그 순환 속에 진실이 담기고, 세월이 스며든다.

그러나 나는 쥐려고만 한다. 내 삶은 끊임없이 움켜쥐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욕심, 후회, 자존심... 무엇 하나 제대로 내려놓지 못한 채, 내 마음은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나무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듯, 사람도 때가 되면 홀가분히 덜어낼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 비움의 미덕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움켜잡고만 있다. 나도 나무처럼 가볍고 거리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나무는 비교하지 않는다. 옆에서 벚꽃이 화사하게 피고, 철쭉이 불타듯 피어올라도, 부러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나무는 그저 자신만의 모습으로 산다. 나만의 시간이 흐르고, 나만의 색이 있는 것이다. 나는 자주 남과 나를 비교한다. 타인의 성취는 곧 내 부러움이 되고, 그들의 밝은 얼굴은 내 어두운 그림자가 된다. 나무는 비교하지 않기에 평온하다. 나도 나만의 시간과 색을 가지고 살고 싶다.

여름날, 나무는 바람을 담아내고 그늘을 만든다. 그늘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지나가는 이에게 잠시 쉼을 줄 뿐, 나무는 자신의 그늘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내어줄 뿐이다. 사람들은 그 그늘에서 잠시 쉼을 얻고, 나무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맞이하고 또 보낸다. 나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내 삶을 조용히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쉼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존재의 의미일 것이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 번민의 가지를 자르고, 이기적인 감정들을 겨울 낙엽처럼 털어내고 싶다. 비움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바르게 서고 싶다. 겨울나무처럼, 아무것도 입지 않은 투명한 가지로 햇살을 받아들이며, 내가 누구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떳떳한 존재가 되고 싶다.

나는 본래 나무였을지도 모른다. 문명의 옷을 입고, 말과 생각을 키우며 본성을 숨겼을 뿐, 그 나무처럼 늘 동네 공원 초입에서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보내며 고요히 살아내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나는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고, 다른 이들이 피운 꽃을 부러워하고, 조금의 도움을 생색내거나 쉬었다 말없이 떠나는 이들을 원망하는 때가 많다. 그럼에도, 매일 동네 공원의 그 나무를 떠올리는 일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은 걸음이다. 나무처럼 사는 것, 그것은 고요함 속에서 비움을 배우고, 자비와 자유를 알아가는 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속으로 나직이 되뇐다.“나무가 되고 싶다.”

윤철 수필가는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현) 전북특별자치도문인협회 부회장

전북수필문학상, 새전북신문문학상, 리더스에세이문학상 등 다수 수상

수필집 :'칸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 '나를 닮은 타인 그 이름 가족'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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