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0년04월06일19시11분( Monday ) Sing up Log in
IMG-LOGO

[온누리] 릴케의 전언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2월 19일 13시35분
IMG
호랑이를 꿈꾸는 토끼가 있다. 무리를 이끄는 자가 토끼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모두 같은 소리를 외친다. 망설임이 이어지자 소리가 더 높아진다. 토끼는, 토끼를 놓아준다. 비웃음이 쏟아지고 명령한 자는 한 손에 토끼를 잡아 죽여버린다. 잔인함이 용맹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영화 ‘조조 래빗’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권위에 복종해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실험으로 증명했다. 1961년에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이라고 포장해서 학생 역할을 담당하는 피실험자에게 가짜 전기 충격장치를 달고, 교사에게는 가짜란 걸 모르게 하고 학생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다. 65%의 참가자들이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렸다. 상대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비명도 들었으나 권위에 복종하고 만 것이다. 밀그램이 이 실험을 하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600만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진술 때문이었다. 그는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치가 되기 전에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악의 평범성’을 주창했다. 폭정과 전체주의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이 더 쉽다는 것이다. 분위기와 사회구조의 흐름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주도하는 기운에 휩쓸려 언행이 나오기 마련이다. 강력한 헤게모니는 개인의 판단을 짓누르고 정해진 방식대로 이끈다. 영화 ‘조조 래빗’의 주인공은 열 살 남자아이다. 호랑이가 되라고 부추기는 히틀러는 상상의 친구다. 평화를 사랑하는 엄마는 시종일관 낙관적이고 환하다. 딸은 이미 죽었고, 남편은 생사를 알 수 없지만, 엄마는 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빠를 그리워하며 불평하는 조조를 이끌며 엄마는 아빠 역할극을 벌인다. 모두 함께 춤을 추자고 말하며 조조를 웃게 한다. 그런 엄마는 딸의 친구인 유대 소녀를 집에 숨겨 살게 한다. 때때로 절망에 빠진 소녀에게 엄마는 말한다. “너는 지금 도전하고 있어. 네가 살 수 없을 거라고 여겼잖니. 그들은 이길 수 없어. 그게 네가 가진 능력이야.” 조조가 은신하고 있는 소녀를 알아차리게 된다. 소녀를 고발할지 말지를 두고 조조는 갈등한다. 신념을 이기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조조는 자신을 지배하던 히틀러를 발로 차 버린다. 자기 안에 있던 진정한 용맹스러움을 찾게 되는 순간이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을 때 소녀와 조조는 문밖을 나서며 천천히 춤을 춘다.

영화 속에는 릴케의 “Go to the Limits of Your Longing”이라는 시 한 구절이 나온다. “모든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세요. 아름다움과 공포라는 감정을 그냥 견뎌봐요. 어떤 느낌도 최종적인 것은 아닙니다. 나를 잃어버리지 마세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불안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릴케가 전하는 말이다. /박정혜(심상 시치료 센터장·전주대 겸임교수)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CAPTCHA Image [ 다른 문자 이미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