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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한가운데]백화수복의 추억

청주는 본래 우리 고유의 술
정종은 ‘마사무네’(まさむね)‘라는 청주 상표 중 하나일뿐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2월 19일 13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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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1월과 2월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장 설레면서도 바쁜 달일 것이다. 필자는 설을 포함해 가족들 생일, 외할아버지 제사까지 겹쳐 1년 중 1월과 2월을 가장 바쁘게 보낸다. 연초에 집중되어 있는 집안행사의 종료를 알리는 외할아버지의 제사는 정월대보름날이다. 정월대보름은 매년 특별한 기억으로 남겨져있다. 절로 입김이 서리는 추운 밤하늘에 휘영청 빛나던 보름달, 환한 달빛을 전등 삼아 술을 사들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시며 골목길로 들어서던 삼촌, 제사상, 제사가 끝난 후 음복하며 서로에게 그해 여름 더위를 팔던 더위팔기 장난. 진중한 제사의 기억과 익살스러운 대보름 놀이의 기억이 혼재되어 남아있는 정월대보름은 언제나 축제와 같았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맞아 근처에 사시던 삼촌이 항상 백화수복 술과 소고기를 사들고 오셨다. 외할아버지 제사 술이 백화수복이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시나브로 잊혀져가고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잊혀졌던 외할아버지 제삿술 백화수복을 다시 만나게 된 건 지난 정월대보름날이었다. 평소에 늘 제삿술을 챙겼던 터라 우연히 마트에 들렀는데 매대에 있는 백화수복을 발견했다.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가격도 적당해 백화수복을 구입해 정말 오랜만에 정월대보름날 외할아버지 제삿술로 사용했다. 제사를 마치고, 안주에 백화수복을 한잔 하시던 아버지는 옛 추억을 떠올리시며 아버지 소싯적에 백화수복을 참 많이 마셨었다 하신다. 당시 청년이었던 아버지는 잔술로 팔던 백화수복을 큰 잔에 15잔을 마시고도 끄떡없었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청년시절부터 나의 어린 시절까지 추억 속에 자리 잡은 백화수복. 새로 만난 백화수복은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상표나 포장이 상당히 세련되고, 우아해졌다. 술 용량이나 병 색깔로 다양해졌다. 두산주류에서 생산하던 것을 롯데주류에서 인수해 생산하고 있는 ‘백화수복’은 1945년부터 제삿날이든 손님접대든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청주이다. 일반적으로 청주를 정종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종은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청주 상표중 하나가 고유명사처럼 잘못 굳어진 것이다. 정종은 일본어로 ‘마사무네’(まさむね)‘라고 읽히는 일본 청주로 술 만드는 장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일본 고사기(古史記)에 의하면 술 빚는 방법은 백제사람 인번을 통해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 술 맛이 오죽 좋았으면 왕 체면도 잊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을까! 술 빚기 기술을 전수한 것은 한민족이건만 현재 한국의 전통주는 막걸리와 소주만이 남았다. ’청주‘라는 자리를 데워 마시는 일본의 청주 상품인 ’정종‘이 대신하면서 청주는 일본 술이나 진배없이 되었다. 현재는 ’백화수복‘을 필두로 ’청하‘,’설화수‘, 국순당 ’차례주‘들이 조금씩 청주의 영역을 넓혀가면서 메워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제례주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백화수복‘의 선전을 보면서도 밀려드는 알 수 없는 섭섭함은 무얼까. 그렇다. 비록 시공간은 다를지라도 아버지와 추억을 함께 하려면 ’백화수복‘을 제사상에서만 보면 안 될 터인데 말이다. 아버지의 술 무용담을 백화수복을 파는 대포집에서 들으면 안되는 것일까? 정월대보름 외할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면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 백화수복과의 추억. 짧은 만남의 여운이 참 길다./수을문화연구소 주담 대표 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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