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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 조선산 순채 대량 반출

김제 순채(蓴菜), 6차산업으로 키울 복안 마련 시급
일제강점기에 김제 순동에서 대량 재배되었으나, 지금은 순동과 청하면에서 일부 키우고 있어
순동마을은 마을의 방죽인 소못(소매방죽, 금이제)에 순채가 많이 있어 부른 이름
일본인들이 순채를 좋아해 조선산 순채를 대량 반출
하천의 오염 때문에 순채가 싹을 낼 수 없는 데 그 원인이 있어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2월 19일 14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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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김제 순채의 높이는 50~100㎝에 이른다. 뿌리줄기는 물 밑의 펄 속을 옆으로 기며 가지를 친다. 줄기는 원주형으로 드문드문 가지를 친다. 뒷면은 자색을 띤다. 어린 줄기와 잎은 한천과 같은 점질로 덮여 있다. 열매는 달걀 모양이고 물속에서 익으며, 꽃받침과 암술대가 남아 있다. 물위로 5㎝ 정도 솟아올라 꽃을 피운다. 재배법이 까다로워 우리나라에서는 몇 사람만이 알고 있을 정도이다. 하천이 오염되어 웬만해서는 순채가 싹을 낼 수 없다. 순채를 비롯, 마름, 가시연꽃 같은 수초는 잎 뒷면이 짙은 보라색을 띠는데, 이는 자외선을 잘 흡수하기 위해서다.









■김제의 순채는 언제부터 우리 곁에서 사라졌나 알고보니

한-일 국교 정상화로 맨 먼저 이 땅에 발을 디딘 일본인들은 순채를 따러 온 수채(水採)꾼들이었다고 한다. 김제뜰 유역의 농민들간에 내수면 허가권 문제로 분쟁이 그치지 않았음도 알 수 있다. 순채 1캔을 따오면 쌀 한 가마로 값을 매겨주었고, 어떤 농민은 쌀 150가마를 벌어들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 식탁에서 이 순채나물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편집자 주]



예부터 산에서는 송이, 밭에서는 인삼, 물에서는 순채를 제1의 건강식으로 꼽았다. 순채는 무미, 무색, 투명한 우무질에 쌓여 있는 비단 띠 같은 금대(金帶)라는 풀이다. 허균은 ‘도문대작’을 통해 ‘호남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고 해서(海西) 것이 그 다음이다’고 했다. '순채(蓴菜)'는 저수지에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왔으나, 마구 채집해 지금은 찾아보기 드문 식물이 됐다.

김제는 500년 이상 순채의 명산지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순채 음식의 맥이 끊겼다. 순동리에서 대량 재배됐으나 지금은 방죽이 거의 다 메워지고 없다. 마을 이름만 순동리(蓴洞里)로 남았다. ‘순채’는 1530년 증보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김제의 토산물로 등장한다. 그 후 '여지도서'에서도 김제의 토산물로 순채가 포함되어 있다.

김제 순채의 인기는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도 대단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순채를 준사이라고 부르며 환상의 풀이라고 한다.

김제 순채는 미츠이물산 때문에 유명해졌다. ‘산에는 송이, 밭에는 인삼, 물에는 순채가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손꼽힌다. 오래된 연못에 자생하는 순채는 여린 잎을 채취해 병에 담아 식사나 술자리에 제공한다. 깔끔하고 매우 맛있다. 김제지방 명산품이다’고 소개하고 있다.

1929년 발행된 '전북의 안내 책갈피‘라는 책에도 김제에서 생산되는 순채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온다. 잡지 '조선(朝鮮)' 1930년 7월호에서도 전북의 특산품으로 김제 순채를 꼽았다.

'조선의 특산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엔 순채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나온다. 김제의 여관(신풍관)의 주인 이시이 소타로가 일본에서의 경험을 살려 순채에 주목하며 1912년부터 정제해서 판매했다. 조선 판매용은‘김제 명산 순채’라는 라벨을 붙였고, 일본 수출용은 일본 상인들의 요구로 라벨 없이 상자로 수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34년 6월 1일자 매일신보는 김제 순채 공장에서 불이 난 기사가 실렸다. 3호(三戶) 5동과 창고 4동이 전소돼 4만4,500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순(蓴) 자가 들어간 지명은 모두 순채 명산지다. 철원 순담 계곡, 김제 순동리, 의성 순호리 등이다. 순채는 일제강점기에 김제 순동에서 대량 재배되었으나, 지금은 김제시 순동과 청하면에서 일부 키우고 있다. 순동마을은 마을의 방죽인 소못(소매방죽, 금이제)에 순채가 많이 있어 부른 이름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순채를 좋아해 조선산 순채를 대량 반출했다. 일본에서는 순채를 ‘환상의 풀’이라는 뜻으로 ‘준사이’ 또는 ‘누나와’라고 불렀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서부터  순채 음식의 맥이 끊긴 것이다. 이는 하천의 오염 때문에 순채가 싹을 낼 수 없는 데 그 원인이 있다.

1970년 대일 수출이 재개됐고, 이들이 자생하는 습지를 ‘돈못’으로 불렸으나, 산업화 과정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1990년대에는 멸종위기 식물종으로 분류되기까지 했다.

이에 땨라 청정 김제의 특징을 살려 다시금 순동과 청하 순채를 6차 산업의 대표 작목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공이 어려워 반제품밖에 만들지 못하며 완제품은 일본인들이 생산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은 최옥주(김제시 요촌동)씨 등이 그 식품을 완제품이 아닌 반제품으로 시판하고 있다. 순채는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인체에 쌓인 100가지 독소를 제거하며, 열에 의한 마비증과 당뇨, 특히 위궤양·피부종양·위종양 등에 특효가 있으며 뇌에 쌓인 혈액의 노폐물을 제거해 피를 걸러 낸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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