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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지리산에서 마한 왕 달궁 터 찾았다

백두대간 만복대 동쪽 절골, 마한 왕 달궁 터
최고의 혈처, 왕성 반월형, 성벽 산자락 이용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2월 23일 12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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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국정과제가 진행되면서 마한 왕의 달궁 터가 그 실체를 드러냈다. 백두대간 만복대 동쪽 기슭 하단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지 주민들이 절골로 부르는 계곡이다. 만복대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산자락이 중반부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천혜의 명당자리를 만들었는데, 그곳이 달궁 터이다. 조물주가 지리산에 남긴 최고의 걸작품으로 그 평면 형태는 거의 반달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자연의 신비감과 경외감으로 마음이 저절로 초연해진다.

기원전 84년 마한 왕이 전쟁이 일어나자 피난을 떠났는데, 당시 왕이 머문 피난처가 지리산 달궁계곡이다. 마한 왕은 71년 동안 달궁계곡에 머물면서 나라를 다스렸다고 서산대사가 지은 ‘황령기’에 전한다. 최근까지도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가장 넓은 평탄지가 펼쳐진 달궁 자동차 야영장 일대를 대부분 달궁 터로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당시 왕이 생활하던 왕궁을 보호하는 왕성의 흔적이 사방을 둘러봐도 발견되지 않아 적지 않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2019년 11월 24일 달궁 터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모악산지킴이 김정길 회장과 남원문화원 이병채 전 원장, 지리산 마실길 조용섭 이사장 등 10여 분이 함께 했다. 이른 새벽 전주에서 모여 백두대간을 넘어 지리산 달궁계곡 덕동패션에 도착했다. 전북산악연맹 지리산 북부 구조대로 활동하는 덕동패션 정창조 대원의 안내로 절골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절골이라 그런지 평소와 달리 힘이 넘쳐 쉬지 않고 계곡을 올랐다.

절골 중단부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돌더미를 보고 혹시 무너진 달궁의 성벽이 아닐까? 저수지 제방처럼 계곡을 가로지르는 흙으로 축조된 시설물이 마치 왕성의 성벽처럼 보였다. 추정 성벽을 넘어 절골 내로 들어서자 소나무 등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두 눈에 들어온 계단식 지형은 최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고 있지만 계단식 농경지로 개간된 구역도 상당히 넓었다.

달궁 터 탐사대는 20여 분의 산행 끝에 절터에 도착했다. 절터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 했다. 산비탈을 깎아 2단으로 조성된 절터의 규모가 탐사대의 두 눈을 의심케 했다. 거의 반달 모양의 산자락이 절터를 병풍처럼 휘감아 풍수지리에서 최고의 혈처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절터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니 반야봉이 눈앞에 정원처럼 펼쳐졌다. 반야봉 부근에 투구봉과 동북쪽에 망바위봉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본래 달궁 터를 감시하는 임무를 담당하지 않았을까?

당일 탐사대는 절골을 감싼 산자락에 올라 또 다시 놀랐다. 산자락은 자연 그대로가 아닌 사람의 손길이 닿은 성벽이었다. 산자락 바깥쪽은 거의 수직에 가깝도록 깎았고, 산자락이 끈긴 부분은 흙과 돌로 성벽을 이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큰 감동이었다. 달궁계곡이 잘 조망되는 산봉우리 정상부에는 추정 망루시설이 말안장처럼 움푹 들어간 곳에는 성문 터가 있었다. 성벽이 무너져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북문 터는 그 속살을 드러냈다.

아직은 한 차례의 현지조사만 실시하여 절골의 역사성을 속 시원히 밝힐 수 없다. 그렇지만 성벽이 절터를 감싸고 있다는 것은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우리나라에서 성벽의 보호를 받고 있는 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벽이 절을 감싸고 있다면 그 성벽을 헐어야 맞지 않는가? 그만큼 절터는 성벽과 한 몸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한 왕이 이끈 마한세력의 이주 혹은 멸망으로 본래 왕궁 터가 절터로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전북 동부지역에서 제철유적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 지리산 달궁계곡이다. 아직은 달궁계곡 제철유적을 대상으로 한 차례의 발굴도 추진되지 않아 마한 왕과 제철유적의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마한 왕이 달궁계곡으로 피난을 떠나기 훨씬 이전에 철기문화가 전북혁신도시에 전래됐다. 초기철기시대 한반도의 테크노밸리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만경강 유역은 마한의 요람지로 마한 왕의 출발지도 전북혁신도시로 추측된다.

2100년 전 무슨 이유로 마한 왕이 지리산 달궁계곡을 피난처로 삼았을까? 71년 동안 마한 왕이 달궁계곡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국력의 원천은 어디서 나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철이다. 최근에 지리산 달궁계곡은 철의 함유량이 상당히 높은 니켈 철광석 산지로 거듭났다. 마한 왕의 제련기술과 달궁계곡의 철광석이 만나 철기문화를 당당히 꽃피운 것이 아닌가 싶다. 봄이 오면 2차 현지조사를 다녀와서 달궁 터의 역사 이야기와 운봉고원 내 철의 왕국 기문국과의 연관성도 소개하려고 한다./곽장근(군산대 교수 가야문화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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