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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전북인, 시인 안도현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2월 25일 14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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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시인 안도현과 사제 간의 인연이 있다. 필자의 중학교 2, 3학년 담임이 안도현 선생님이다. 때문에 필자는 안도현 시인보다 안도현 선생님이 더 친근하다.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필자가 기억하는 안 선생님은 권위적이지 않은 개방적이던 분이었다. 실례로 3학년 국어 시간에 치른 말하기 시험이 기억에 남는다. 주입식 교육방식이던 당시로써 꾀나 파격적인 경험이었다. 필자가 보고서와 논문을 쓰는 연구원 입장에서 신문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국어 담당이던 안 시인의 교육이 실패하진 않았다.

안 시인이 40년 전북생활을 접고 고향 경북 예천으로 이사 간다. 20살 대학 진학으로 전북과 인연을 맺은 안 시인이 고향에 새로 집을 짓고 귀향을 결정했다. 필자는 그를 떠나보내기 위한 송별회가 지난 20일 있었다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기사에 따르면 안 시인은 40년 동안 “전북에서 학교 다니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시인도 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둘이나 갖고, 할아버지도 됐다”고 소회했다. 전북에서 그의 자취를 살펴보면 안 시인은 1980년 원광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대학재학 중이던 1981년 시 ‘낙동강’으로 대구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당선되며 시인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대학 졸업 후 안 시인은 서울이나 고향으로 떠나지 않고 익산 이리중 국어 교사로 자리를 잡았다. 정확한 기억이 아닌데 필자 1학년 시절, 옆 반 담임이던 안 시인이 결혼해서 신혼여행 간일이었다.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지만 안 시인은 전북을 떠나지 않았다. 필자의 어머니는 당시 전북CBS 라디오에 출연한 안 선생님을 목소리를 듣고 무척 반가워하셨다. 1994년 복직된 장수 산서고에서 1997년까지 근무하며 전북과 인연을 이어갔다. 산서고 교사 시절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가 큰 인기를 얻었다. 필자도 제자로써 한 권 샀다.

산서고 퇴직 이후 전업 작가로 생활하던 안 시인은 2004년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했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후보 공동선대위원장 등 전국적으로 활동했지만 전북을 떠나지 않았다. 2010년 경 전주 한 막걸리집에서 필자가 안 선생님을 우연히 뵙고 인사를 드렸던 일도 있다.

전북에서 직장을 다니던 안 시인은 지난해 단국대 문예창작과로 자리를 옮겼다. 전주에서 단국대 문예창작과가 위치한 천안을 오가던 안 시인이 나이 예순에 그의 동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 이 소식을 접한 필자는 제자로서 안 시인에게 “선생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건강하시고 아주 자주 전북으로 돌아오세요” 말을 전한다.

/최윤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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