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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민 124명이 한땀 한땀 수놓은 천인산

135년전, 유생 이택열등이 신영균(申永均, 1833-1922)을 기리는 ‘천인산(日傘)으로, 손수 만들어 바쳐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4월 05일 11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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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수 선거 앞두고 선정 베푼 진안현감 신영균을 살펴보니



지금으로부터 1백35년전, 진안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희귀 문화유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방관의 선정을 기원하며 전 지역민의 이름을 수놓아 바친 천인산이 바로 그것이다.

유생 이택열 등 1백24명이 진안현감(1885.5-1888.3) 신영균(申永均, 1833-1922)의 선정을 기리는 ‘천인산(일산(日傘)으로, 감사, 유수, 수령 들이 부임할 때 받치던 양산)’을 정성스럽게 손수 만들어 바쳤다.

진안현감 신영균의 선정을 기리며 만든 ‘천인산(千人傘, 지름 1백40cm, 길이 2백30cm)’은 고종 22년(1885년) 11월에 유생 이덕연 등 1백24명의 사람들이 참여 그 공덕을 흥모하면서 만든 소중한 유물로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 내용은 ‘천인산(千人傘)’이란 타이틀과 함께 ‘수복강령(壽福康寧)’이란 글로 시작, 이어 주민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귀감이 되는 정치를 생활화, 그 감화를 잊지 못한다는 내용이 수(繡)놓아 쓰여져 있으며, 바로 그 뒤에 1백24명의 명단이 모두 나열됐다.

1885년 5월부터 1888년 3월까지 진안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선정을 베푼 까닭에 지역민들이 그를 ‘신보(神父)’라 부르고, 생사당(生祠堂,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는 표시로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백성들이 제사 지내는 사당)을 건립하기도 했다는 기록이다. 후에 진안구 상전면 갈현마을에 살았다는 일부의 기록도 보인다.

뿐만 아니라 ‘현감신후영균애민선정비(縣監申侯永均愛民善政碑)’도 남아있다. 군산 회현면 학당리엔 자리한 현감 신영균 애민선정비는 전북에 몇안되는 철비의 하나다.

그렇다면 현감 이력은 진안인데, 철비는 왜 군산에 있을까?

이 비는 당초 진안군청사 앞에 있었다. 1978년 군청에서 진안읍 군상리 우화정 부근 오솔길로 옮겼으나 망가지면서 같은 동네에 살던 신영균의 막내딸 신기춘 할머니가 집안 창고에 보관했다. 이때가 1983년 무렵이다.

그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곳에서 관리할 사람이 없어 신영균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군산시 회현면 대정리 내기마을 뒤편 계령산 동남쪽 정상 묘앞에 세워놓았다. 그후 2000년 12월 묘의 상석과 봉분 테두리석을 새로 하면서 평산신씨 문중에서 깨진 밑부분을 용접을 해서 재실 옆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영균은 조선 말기의 문관으로 고종 13년(1876년) 장사랑에 제수되어 순강원수봉관(順康院守奉官)을 지냈으며, 의금부도사, 공릉령(恭陵令), 진안현감, 청안현감에 임명됐으며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했다.

이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동시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특진됐다. 1884년 갑신정변 때 동지 1백여 인을 규합, 세자와 신정왕후, 명성황후를 호위한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내탕금 5천냥을 하사받았다.

그는 이 자금으로 갑신정변에 반대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창의계(倡義契)를 조직, 왕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기도 했다. 저서로 ‘인당집(忍堂集)’을 펴낸 바 있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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