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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4.19혁명과 4.4전북대 시위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4월 07일 13시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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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일어난 4․19혁명이 오는 19일 60주년을 맞는다. 4․19혁명은 공무원과 관변 단체를 동원한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대중의 정권타도 항쟁이다. 그 해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4․19혁명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민중 운동으로 기록되었다.

위대한 승리의 역사에서 전북 역시 뜻깊은 역할을 수행했다. 전북연구원은 지난 2월 ‘한국 민주주의 뿌리 전라북도: 청년 4․19의 시작’ 이슈브리핑을 발간했다. 브리핑에서 연구원은 4․19혁명과 연결된 4․4전북대 시위의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4․19혁명보다 14일 앞선 전북대에서 전대열과 황춘열의 주도로 부정선거를 규탄한 4․4전북대 시위가 펼쳐졌다. 대학 개강일에 맞춰 펼쳐진 이 시위는 전국 대학교 가운데 최초로 일어났다. 작가 김환표는 4․4전북대 시위를 ‘4․19 대학생 시위의 효시’로 평가했다. 4․4전북대 시위는 전대열과 황춘열이 전북 4․19혁명을 주도하며 이어진다. 시위는 20일에도 이어졌다. 계속된 시위에서 고등학생과 일반시민이 동참하며 범위를 확장하였다.

4․4전북대 시위는 사전 정보를 입수한 경찰에 의해 교내에서 진압되었다. 4․4전북대 시위는 가두 진출에 실패했지만 7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함으로써 전북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4․4전북대 시위는 다른 시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되었다.

김 작가는 4․4전북대 시위에 대해 기억의 부재 이유로 언론의 침묵과 전북대의 위치로 설명한다. 먼저 중앙지가 4․4전북대 시위를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4․4전북대 시위는 당시 지방지의 진압기사로만 기록되었다. 더불어 당시 전주시내 외곽에 위치한 전북대의 지리적 특성으로 시민들에게 노출되기도 어려웠다.

과거 10년 전 4․4전북대 시위의 의미를 조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10년 4월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는 4․19혁명 50돌을 맞아 ‘4․4시위와 4․19혁명’ 학술대회를 개최했었다. 4․4전북대 시위 당시 학생들은 동학혁명의 발상지인 전북에서 3․1 만세운동과 6․10 만세운동 등 선열의 뒤를 이어 궐기한다는 내용을 담은 ‘민주선언문’을 날인하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애석하게 이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4․19혁명 60주년을 맞아 4․4전북대 시위에 대한 현재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생존해있는 시위 참여자들의 기억을 더듬어 ‘민주선언문’을 복원하고 당시 상황을 기록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가려진 4․4전북대 시위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최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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