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0년07월12일17시31분( Sunday ) Sing up Log in
IMG-LOGO

[온누리]남원 몽심재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5월 24일 13시33분
IMG
지리산 섬진강 문화재 활용사업단이 지난 18일에 국가민속문화재 제149호인 남원 몽심재(夢心齋) 고택에서 ‘주제가 있는 마을음악제’를 가졌다. 몽심재는 조선 후기 박동식(1753~1830)이 지은 전북 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으로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으나, 주변에 넓은 들이 있어서 그리 척박하지는 않다. 대청 앞쪽에는 문을 설치했다. 이를 통해 이 지역에도 대청 앞쪽을 폐쇄하는 유형이 분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는 건물이다.

이곳 비전마을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도운 마을이지만, 내호곡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반대하해 생겨난 마을이다. 여류명창 이화중선은 내호곡의 박씨가문에 시집을 갔다가 '소리의 길'을 찾아 집을 뛰쳐나와 결국 비전마을에 옮겨오게 됐다고 한다. 이화중선의 시댁이 있는 내호곡에는 몽심재가 있다. 후손들이 이 집을 지으면서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보낸 시에서 ‘몽(夢)’자와 심‘(心)’자를 차자(借字)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격동류면원량몽(隔洞柳眠元亮夢, 마을을 등지고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을 꿈꾸며 잠자고) 등산미토백이심(登山薇吐伯夷心, 산에 올라보니 고사리는 백이의 마음을 토하는구나)’이 바로 그 시다.

박문수는 고려말 우정승을 지낸 사람으로 조선이 건국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가 충정을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하나이다. 두문동에 은둔한 박문수는 '도연명'을 꿈꾸고 '백이 숙제의 마음'을 가지려고 했다.

집 뒤로 보이는 산은 아미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이는 초승달 형태로 여자 후손에게 복이 많을 형상이라 한다. 그런 이유인지는 모르나 이 마을은 집안마다 여자들이 훌륭한 분이 많다는 이야기를 마을 어른들이 전한다

뭐니 뭐니 해도 몽심재 근본 꿈(夢)은 가문의 영원한 번성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죽산박씨가 기본적으로 가지려 한 마음씨(心)는 '적선(積善)철학'이었다. 재력과 후한 인심은 남쪽지방에 소문이 파다해 한양을 오가는 많은 선비들이 몽심재를 들락였다. 과객들에게 사랑방이었다. 우선, 주인은 문간채에 딸린 정자, 요요정(樂樂亭)을 하인들에게 쉼터로 내주었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 대한 배려였다. 조선사회에서 양반 전유공간인 정자를 하인들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몽심재 바위 마당에 화강암 바위가 몽심재의 ‘존심’처럼 놓여 있다. '존심대(存心臺)'와 '주일암(主壹岩)' 글자가 선명하다. 선한 성품을 잃지 말고 마음에 새기라는 몽심재 실천 명제들이 아닐까. 이 글자들이 희미해지지 않는 한 몽심재의 꿈과 마음, '몽심'은 건재한 셈이다. 음악회가 다음달 1일, 10일, 7월 17일, 8월 29일, 9월 26일 등 모두 6번의 음악제가 열릴 예정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적선(積善)’이 더욱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종근 기자의 최근기사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CAPTCHA Image [ 다른 문자 이미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