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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재발견] 문화재돌봄 10년의 현장을 가다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6월 02일 14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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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문화재돌봄사업단이 발족한지 10년째 되는 해이다. 이번 지면부터는 우리 연구소가 10년의 세월동안 ‘문화재 예방보존’에 중점을 두고 문화재를 관리해 오면서 이루어진 여러 개선된 점과 에피소드 등을 정리하여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먼저 임실 진구사지 석등을 시작으로..... , 임실 진구사지 석등은 1963년 1월에 보물 제267호로 지정되었으며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다음으로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큰 규모의 석등이다. 우리나라 석등의 시작은 백제시대의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충남 부여 가탑리폐사지의 백제 석등 대석 발견과 익산 미륵사지에서 백제석등의 옥개석, 화사석, 연화대좌석 등의 부재가 발견되어서라고 한다.

등은 원래 어둠을 밝히는 것으로 불교에 있어서 부처의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게 부처의 지헤를 상징하는 등불을 보시하면 몸이 튼튼해지고 재물을 얻게 되고 깨달음의 과보를 얻을 수 있고, 간탐의 마음이 없어지며, 부처의 탑묘에 등을 밝히면 죽은 후 33천에 태어나며 그 하늘에서 청정한 몸과 뛰어난 덕, 청정한 생각과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그러한 염원이 있어서 석탄일에 등을 밝히는 행사가 이루어지는가보다.

석등은 부처의 지혜가 끊이지 않기를 염원하고, 어두운 도량을 밝히는 이중적 의미로 사용되어 여러 곳의 석등에 그으름이 남아 있다. 석등의 구조는 땅을 딛고 세운 맨 아래 돌판으로 아래를 향한 연꽃잎을 조각한 받침돌 기능의 하대석과 여러 장식을 넣은 중간부의 중대석, 그리고 하늘을 향한 연꽃을 조각한 상대석인 3단의 석등의 다리 역할을 하는 기대부 구조와 등불을 직접 넣어 밝히는 창의 모습을 한 화사석의 몸체부 구조와 등불을 덮는 지붕인 옥개석과 그 위에 돌구슬을 쌓아놓은 것처럼 장식한 보주의 옥개부로 구성된다. 또한 백제시대 석등의 화사석은 8각이고 그 가운데 4면에 화창구를 낸 형태를 기본으로 하며, 이러한 형태를 기본으로 통일신라시대까지 이어졌다.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중대석은 2종류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하나의 유형은 중대석을 8각의 기둥처럼 세운 형태이고 나머지 하나의 유형은 중대석을 북의 모양처럼 세운 고복형이다. 이 고복형 석등은 대개 화엄사 각황전석등과 진구사지석등, 실상사석등 등 호남지역에서 볼 수 있는데, 모두 화창구가 8면에 마련되었고 복련석인 하대석과 옥개석에 귀꽃을 크게 강조한 점이 특징이다.

임실 진구사지는 1998년 발굴조사 시, “진구(珍丘)”가 새겨진 명문기와를 통해 『삼국유사』에 기록된 진구사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진구사지 석등은 지정될 당시, 지역 이름을 따라 ‘용암리석등’이었으나 이 명문기와가 발견된 이후 2010년에 “진구사지 석등”이라는 이름표를 갖게 되었다.

(재)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문화재돌봄 전북동부권사업단이 문화재청의 문화재 상시관리 정책을 위해 문화재상시관리사업을 위탁받았던 첫 해인 2011년에, 관리대상 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와 미지정문화재에 한정되었었다. 우리는 국가지정문화재와 미지정문화재의 목록에 따라 상태점검표를 작성하였다. 관람객이 많은 국가지정문화재와 사찰문화재(그 가운데서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는 주변 환경이라 던지 문화재의 상태가 좋았다. 그러나 국가지정문화재라 할지라도 ‘홀로 문화재’와 미지정문화재는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지정문화재 가운데 ‘홀로 문화재’를 파악하고 미지정문화재는 주소를 따라 위치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진구사지 석등도 ‘홀로 문화재’로 분류하였다. 2011년도에 처음 시작한 일은 주변의 잡초를 없애는 예초작업이었다. 물론 지자체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으나 잡초가 자라는 만큼 아이들의 키가 성장하면 좋겠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일할 수 있는 마을 분들이 모두 나와 풀을 베고 청소를 해도 돌아서면 풀이 자라 어찌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진구사지 석등이 있는 장소는 일정한 구역으로 구획되었으나 범위가 넓어 마을 분들만의 관리는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의 규모를 자랑하는 진구사지 석등을 풀들 속에서 번듯하게 자랑하기 위하여 예초기를 잘 사용하는 단원들을 앞세우고 예초기에 의해 잘려진 잡초를 말끔하게 치울 힘 있는 단원을 뒤에 세우고 예초를 진행했다. 한참 일하고 있는데 마을 분이라며 한 남자분이 따지신다! 왜 그 풀을 제거하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우리 모두는 감탄했다. 어느 지역에 가서 문화재를 관리하다 보면 ‘왜 이제 와서 일하냐!’고 야단을 치시는데 와우~ 이렇게 마을의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신다니.....역시 국가지정문화재가 있는 마을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의 의견은 그게 아니라 일자리를 빼앗기신다고 생각하신 거였다!. 설명을 잘 드렸으나 여러 인간적인 오해들이 생겼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였는데 우리의 연세 드신 여단원이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누나가 되어버리셨다. 그 후 우리는 예초한 풀을 잘 삭히어 거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마을에 드리기도 하였다.

문화재돌봄의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상생’이라는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를 우리의 보물창고에 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우선적으로 예초를 하면서 당당한 모습의 석등이 드러나 주변을 압도할 때 2012년부터 우리는 석등의 여러 열화 현상을 목격하였다. 석등에 사질화도 진행되고 있었고 이끼와 지의류들도 서식하고 있었고 퇴락하고 있는 여러 현상을 발견하였다. 이에 따라 2012년도부터 온습도 측정과 pH측정, 2013년도에 풍향풍속기를 설치하여 열화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그리고 석탑과 석등, 석불상 주변의 잔디는 습기 유발, 부재의 이격 등의 염려에 의해 2013년에 콩자갈로 대체하였다. 2014년 석등의 보존처리 이후 상태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2019년에 진구사지에 남아 있는 계단과 기단, 석축 등이 기울고 있어서 바로잡기를 하였다. 진구사지석등은 임실의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상륜부의 보주만 완전하다면 국보로 갈 수 있는 매우 훌륭한 문화재이다. 주변의 어느 집, 어느 돌담장이라도 혹시 보주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눈 여겨 보고 다닌다. 관심 있으신분들이 발견 또는 이것이 그것인가?라고 의심된다면 임실군 문화재담당 또는 (재)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 문화재돌봄사업단(063-243-3177)으로 연락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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