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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남원시 제철유적과 기문국, 남원경

남원시 제철유적, 남강과 섬진강 유역 공존
기문국과 남원경 탄생, 실상사 철불의 요람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08월 02일 14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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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장근(군산대 교수, 가야문화연구소장)



백두대간이 남원시를 남강과 섬진강 유역으로 갈라놓는다. 남강 유역은 운봉고원으로 달리 신선의 땅으로 불리며, 섬진강 유역은 통일신라 남원경이 설치된 곳이다. 가야사 국정과제의 결실로 운봉고원에서 40여 개소와 섬진강 유역에서 3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학계에 보고됐다. 전북 가야의 실체를 알리기 위한 고고학자들의 뚝심과 행정 지원이 일구어낸 큰 성과이다.

조선시대 ‘십승지지’에 그 이름을 올린 운봉고원은 한마디로 철광석의 보고이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철광석이 하나로 응축되어 탄생시킨 것이 운봉고원 제철유적이다. 운봉고원 철광석은 니켈 함유량이 월등히 높아 최상급으로 통한다. 백두대간 노고단에서 지리산 달궁계곡을 지나 삼봉산까지 30km 구역에 4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조밀하게 산재해 있다.

2012년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제철유적이 그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렸다. 그해 이른 봄 가뭄이 심해 달궁계곡 철광석이 뿜어낸 진한 황갈색의 녹물이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오래 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계곡에 자리한 제철유적을 찾아 세상에 알리는데 끝없는 고고학자들의 도전과 열정이 필요로 했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이 바로 제철유적이다.

지리산 달궁계곡 내 하점골 제철유적은 철광석의 채광부터 숯을 가지고 철광석을 환원시켜 철을 추출해 내는 제철공정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제 막 문을 연 철의 야외 유적공원을 연상시킬 만큼 제철유적의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에 가깝다. 지금이라도 지리산 달궁계곡 하점골 제철유적을 알리는 안내문만 세워도 역사 문화 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백두대간 만복대에서 바래봉을 지나 덕두산까지 뻗은 산자락 양쪽 골짜기에도 수많은 제철유적이 밀집 분포되어 있다. 운봉읍에서 지방도를 따라 정령치 방면으로 2km 쯤 가면 선유폭포에 도달하는데, 그 부근에 슬래그(쇠똥)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남원 고기리 제철유적으로 쇠똥의 분포 범위가 1.5km 내외로 두 차례의 발굴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세걸산 서북쪽 금새암골에도 제철유적이 있는데, 수철리라는 마을 지명도 제철유적에서 비롯됐다. 지명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데, 우리 선조들의 혜안이 담긴 지명으로도 제철유적의 존재를 후대에 알렸다. 세걸산 서북쪽 기슭 금샘에서 발원하는 광천이 수철리 금새암골을 통과하고 있는데, 여기서 금샘은 쇠샘을 의미한다.

매년 5월 중순 경 철쭉제로 유명한 바래봉 북쪽 골짜기에 운봉읍 화수리 옥계동 제철유적이 있다. 옥계저수지에서 위쪽으로 1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사방이 산줄기로 감싸여 천연의 자연분지를 이룬다. 고고학에서 옥은 최고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한다. 고고학자들이 옥계동 옥(玉)자에 큰 의미를 두고 도전 끝에 옥계동 제철유적을 찾았다.

남원 옥계동 제철유적은 남북으로 약간 긴 장타원형으로 남북 길이 700m, 동서 폭 500m에 달한다. 모두 세 차례의 발굴에서 채석장과 파쇄장, 배소지, 제련로, 초대형 슬래그 더미와 숯가마 등이 확인됐고, 유물은 회청색 경질토기편과 자기편, 송풍관편 등이 수습됐다. 전북 동부지역에서 학계에 보고된 230여 개소의 제철유적 중 초대형에 속한다.

섬진강유역에는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일대에 1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산재해 있다. 1906년 장수군으로 편입된 번암면에서도 20여 개소의 제철유적이 더 발견됐다. 아직까지 제철유적을 대상으로 발굴이 시작되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백제 사비기 섬진강 유역에서 남원이 정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데 제철유적이 결정적인 밑거름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84년 마한 왕이 지리산 달궁계곡을 피난지로 삼아 운봉고원에 철기문화가 첫 전래됐다. 운봉고원에 지역적인 기반을 둔 가야 왕국 기문국은 철의 왕국으로 철의 생산과 유통으로 번성했다. 전북 가야를 멸망시킨 백제는 사비기 지방 거점 남방성을 섬진강 유역에 두었다. 남원의 철산지가 하나로 통합되어, 급기야 남원이 정치 중심지이자 철의 집산지로 급부상했다.

백제 무왕은 운봉고원 철산지를 탈환하기 위해 백두대간 아막성에서 신라와 20년 철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백제를 중흥으로 인도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전북 동부지역 철산지를 하나로 묶어 남원경을 설치했다. 운봉고원 내 실상사 철불은 천년 동안 운봉고원에서 꽃피웠던 철기문화의 백미이자 화룡점정이다. 갑작스런 후백제 멸망으로 전북 동부지역 철산지가 일시에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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