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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반(半)보기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09월 28일 07시13분
경남 거창 수승대(搜勝臺·명승 제53호)는 요수(樂水) 신권(愼權1501~1573)이 벼슬을 떠나와 은거하며 살던 곳이다. 수승대의 본래 이름은 수송대(愁送臺)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 국력이 쇠약해진 백제가 신라로 가던 사신을 환송하던 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의 이름은 1543년 퇴계 이황이 영승마을에 머물다 떠나면서 그 내력을 듣고 이곳에 들러 아름다운 경치에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수승대로 이름을 고치라는 시 한 수를 짓고 바위에 이 말을 새겨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만남과 헤어짐이 도대체 무엇일까.

한가위 무렵에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척 관계의 부인들이나 시집간 딸과 어머니가 두 집 사이의 중간쯤 되는 산이나 시냇가 같은 곳에서 만나 장만해 온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일을 ‘반(半)보기’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한가위 무렵에서 색다른 전통이 발견된 바, 차례를 마친 여성들에게 허락된 짧은 휴가 ‘근친(覲親)’, 또는 ‘중로상봉(中路相逢)’ , 또는 중로(中路)보기가 바로 그것이다. 유교사회이던 조선시대에는 ‘출가외인’이니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처럼 사돈 간에 왕래하면서 가까이 지내는 것을 서로 원치 않았다. 그런데 한가위와 같이 특별한 날에는 시댁의 허가를 받은 며느리의 친정나들이가 허락된 것이다. 근친을 갈 때에는 햇곡식으로 떡을 만들고 술을 빚어 가거나 형편에 따라 버선 또는 의복 등 선물을 마련했다. 용어에서 짐작되듯 당일치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거리가 멀 경우 부득이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가 다시 그날 안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애틋한 풍속이다. ‘처가와 변소는 멀어야 좋다’는 속담이 있듯, 남녀를 불문하고 사돈 간의 교류가 거의 없던 전통사회에서 상호 방문 혹은 왕래는 거의 불가능했다.

'반보기'를 통해사돈관계가 돈독한 집안에서는 시집간 딸과 친정 어머니뿐만 아니라 사돈 부인들이 함께 만나는 경우도 많았고, 동년배들이 함께 참석해 흥을 돋우기도 했다. 딸과 친정어머니의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돈의 교류를 활성화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모녀의 상봉과 회포 풀기가 사돈의 교류, 조금 더 나아가 집안 여성들 소통의 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유교사상으로 엄격한 가족생활을 영위하던 시대에도 이처럼 한가위때면 여성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선물했다. 요즘은 민족대이동이라 해서 한가위에 국민 대다수가 고향을 찾아 일가 친척을 만나고, 조상에게 입은 덕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한가위는 온보기는커녕 ‘반보기’마저도 쉽지 않다. 코로나가 종식돼 하루 빨리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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