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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 성배는 어디에?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10월 21일 13시30분
/박정혜(심상 시치료 센터장·전주대 겸임교수)









중세시대 유럽에서 전해오는 파르시팔 전설이 있다. 성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던 어부왕이 별안간 온몸이 마비되었다. 희한하게도 고통은 왕만이 받은 것이 아니었다. 왕 주변을 이루는 궁전과 탑, 정원의 모든 것들이 폐허가 되어갔다. 동물은 번식하지 않고 나무는 열매 맺지 못했으며, 샘은 고갈되었다. 많은 의사들이 어부왕을 치료하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기사들은 그저 밤낮없이 찾아와서 왕의 용태를 물어보며 허울 좋게 예의를 차리곤 했다.



어느 날, 파르시팔이라는 가난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한 기사가 찾아왔다. 그는 예법을 어기는 무식한 자로 보였다, 그는 곧장 왕에게로 나아가서 다짜고짜 질문했다. “성배는 어디 있습니까?”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화했다. 왕은 병석을 떨치고 일어났고, 샘물은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초목은 다시 살아나고 성은 예전의 위엄을 되찾았다. 파르시팔의 한 마디가 자연 전체를 소생시켰다. 파르시팔의 질문은 어부왕을 비롯하여 온 우주의 핵심 원리를 담고 있다. 성배, 즉, 진실과 성스러움, 생명의 중심과 근원의 힘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파르시팔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 핵심을 건드릴 엄두도 내지 않았다.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의 결여, 신에 대한 무관심,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인해 세상은 병들고 멸망해 갔던 것이다. 논어의 이인편에는 공자가 한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말이 나온다. 주자는 “도라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이치다. 만일 그것을 들을 수 있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모든 말이 하나다.

어수선한 세상이다. 첨단 과학기술 시대에 등장한 바이러스는 아직도 기세등등하다. 언제 어디에서 죽음이 똬리를 틀고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세태 속에서 버텨내는 것은 기실 두렵고 고단하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가시밭길을 가고 있다. 살기에 급급한다고 해서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럴수록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진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다. 이는 영혼을 고양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 모든 성배전설의 결론이 그러하듯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신은 먼 곳에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영성이 있다. 진정한 자기 초월을 향하는 역동성, 고귀하고 높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실제, 삶의 본질이 영성이다. 도나 성배는 인간이 영성을 추구할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영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온몸의 마비를 경험하는 어부왕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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