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1년01월21일 19:48 Sing up Log in
IMG-LOGO

17세기 숙종 대 왕실보첩이 정리, 편찬되는 과정


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11월 23일 07시51분
IMG
'숙종이 정리한 왕실가족의 역사와 기록(지은이 원창애, 출판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은 17세기 숙종 대 왕실보첩이 정리, 편찬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보첩은 전통시대 친족의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료이다. 성리학적인 친족의식이 정착되기 전에는 부계와 모계 양쪽 친족을 모두 중히 여겼다. 따라서 조선 초부터 기록된 왕실보첩은 부계와 모계를 모두 중시하는 등 조선 이전의 전통적 친족의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조선 왕실보첩은 수록 내용이나 형식에 따라서 보(譜)·록(錄)·첩(牒)·도(圖) 등 다양했다. 조선 초기부터 편찬되었던 역대 국왕의 친족만을 기재한 『선원록(璿源錄)』, 역대 국왕의 가족만을 적어 놓은 『어첩(御牒)』, 역대 국왕의 『팔고조도(八高祖圖)』, 국왕과 왕후의 친족을 적은 『돈녕보첩(敦寧譜牒)』 등이 있다. 왕실보첩의 큰 특징은 국왕과의 촌수를 밝혀서 친족 범위 내의 인물만을 수록한 점이다. 이러한 왕실보첩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때 다시 편찬하나, 오류가 많아 수정이 불가피했지만 국가 재정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종친과 관료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왕실보첩의 수정 편찬을 청했고, 숙종 대에 이르러 왕실보첩의 수정은 물론 새로운 보첩까지 편찬되었다. 이때 수정 편찬된 왕실보첩은 오류 수정에 그치지 않고, 부계 위주, 철저한 종통의식, 적서 차별, 남녀 구별 등 성리학적 친족의식을 크게 반영했다. 이 시기에 주목한 이유는 예송논쟁을 마무리한 숙종이 왕실 친인척의 면면을 공개하여 왕실의 위상을 강화하고자 『선원계보기략』이라는 새로운 왕실보첩을 편찬하고, 그 과정에서 기존 보첩을 수정 편찬하면서 성리학적 친족의식을 적극 반영하는 등 변화된 양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와는 달라진 왕식보첩의 편찬 과정을 통해 17세기 조선의 사회상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이종근기자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종근 기자의 최근기사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CAPTCHA Image [ 다른 문자 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