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1년01월20일 19:14 Sing up Log in
IMG-LOGO

[생의한가운데] 하향주에 대한 소고

쌀로만 빚어도 연꽃향이 나는 뛰어난 술
내년에는 하향주처럼 향기로운 삶을 선물받기를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0년 12월 02일 15시18분
IMG
/수을문화연구소 주담 대표 박소영



2005년 3월은 봄답지 않게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12월이나 1월 날씨처럼 하얀 눈발이 날리던 2005년 3월 초. 그날은 서울에서 술을 빚고 연구하는 이들이 전주로 내려와 옛 조상들의 주도를 체험하고 있었다. 술의 고수들답게 ‘향음주례’체험에 쓰일 청주는 자신들이 직접 빚은 술로 준비해왔는데, 당시 입사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필자에게 맑은 빛깔의 청주 한 잔이 건네졌다. 워낙 술을 좋아하던 터라 덥석 받아 한 모금 들이킨 그 청주 한잔은 필자에게 그야말로 강력한 문화적 충격을 선사했다. 필자에게 강력한 한방을 먹인 그 한 잔의 술은 맛과 향기만큼 멋진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은은한 연꽃 향기를 품고 있다고 이름 붙여진 ‘하향주(荷香酒)’였다. 가양주는 쌀, 물, 누룩만으로 빚는 술이다. 일체 첨가물없이 순수하게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꽃향기가 과실향기가 나서 ‘방향주(芳香酒)’라고도 불린다. 이름 때문에 연꽃이나 연잎을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뒤엎고 하향주는 단지 쌀로 만든 구멍떡으로 빚는 술이다. 그런데 하향주처럼 쌀로 구멍떡을 만들어 술을 빚는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구멍떡으로 빚는 술은 달고 향기가 뛰어난데다 저장성도 좋았지만 재료 양에 비해 얻어지는 술의 양이 너무 적어 일반가정에서 빚기에는 비용 부담이 컸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문가에서도 반주나 귀한 손님접대용으로만 빚어 마셨을 만큼 귀한 술이었다. 재료 양도 그렇지만 양조 과정도 만만치 않아서 술 빚는 실력이 뛰어나야만 빚을 수 있다. 뛰어난 향기와 달짝지근한 맛, 깨끗한 빛깔 등 필자의 눈과 입맛을 사로잡았던 하향주를 다시 만난 것은 연구반 수업 때였다. 하향주는 구멍떡이라는 방식으로 밑술을 만드는데 구멍떡은 누룩과 버무리기에 좋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멍울진 것이 없도록 삶은 떡을 풀어서 죽이 되게 만드는데 거의 인절미에 가까운 상태가 될 때까지 풀어야한다. 구멍떡을 막 건져내서 짓이겨서 풀어내 죽으로 만드는데 떡이 식어서 굳어지기 전에 풀어야해서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뜨거운 구멍떡을 건지자마자 주걱 같은 도구로 마구 짓이기는데, 뜨겁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하향주를 빚으면서 “술”이란 것은 참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마음을 쏟아 정성스럽게 빚는 것을 효모가 아는 건지 술을 만들 때 흘리는 땀만큼 술의 향기와 맛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 접한 구멍떡 술 빚기는 짧은 술 빚기 경력으로 봤을 때 가장 힘든 방법이었지만 봄날 같지 않게 흰 눈이 소담히 내리던 어느 3월 경험했던 그 은은하고 향기로운 하향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초보였던지라 하얀 눈발이 간간히 들어오던 그 맑은 청주 잔에 담겨있던 하향주와는 전혀 다른 녀석을 만들고야 말았지만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며 구멍떡을 짓이기던 힘겨운 노동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삶도 술을 빚는 것처럼 정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술 빚는 방법이 쉬운 술은 술맛도 평이하다. 희한하게도 빚는 과정이 힘겨울수록 뛰어난 술들이 만들어진다. 마치 술 빚는 힘겨움을 보상하듯이 지극히 뛰어난 맛과 향기를 뿜어댄다. 인간의 삶도 마치 술 빚는 과정처럼 힘겨웠던 만큼 더 깊고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애쓰고 더 힘겨웠던 만큼 그에 비례하는 선물같은 삶이 주어진다면 좋겠다. 코로나로 인해 한 해의 삶을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이 드는 연말이다. 내년에는 올해 힘들었던 만큼 선물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일상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새전북신문 기자의 최근기사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CAPTCHA Image [ 다른 문자 이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