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일 도서서원 원장(선비문화수련원 원장), 이동신 도선서원 별유사 등 퇴계 이황의 문인과 후손, 연구자들이 이번주에 부안 반계 유형원 유적지를 찾을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퇴계학’과 ‘반계학’ 등 지역과 역사라는 시공간을 묶어 영호남과 해당 지역을 함께 상생하는 프로그램 및 사업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들은 ‘실학의 비조’ 반계 유형원(1622~1673) 탄신 400주년 동아시아 국제학술회의가 15일부터 17일까지 ‘위기의 실학을 다시 생각한다’을 주제로 고려대 대강당 아주홀, 부안 소노벨 변산, 반계유적지 등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한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한국실학학회와 부안군이 주최하고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전북도청, (재)한국학 호남진흥원, 전북연구원, 고려대학교가 후원한다. 16일 부안 소노벨 변산에서 열리는 ‘영호남 지역교류 문화행사’ ‘퇴계학과 반계학의 만남, 안동과 부안’은 부안문화원, 도산서원 선비문화연수원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이 후원한다. 행사는 크게 ‘동아시아실학 국제학술회의’와 ‘영호남 지역교류 문화행사’로 나뉘어 진행된다. 또한 부안문화원,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공동주최로 개최되는 영호남 지역교류 행사는 ‘퇴계학과 반계학의 만남, 안동과 부안’이라는 주제로 강연과 공연, 전시를 갖는다. 이번 학술대회 가운데 이형성 등 주제 발표를 하는 3명의 연구자들의 논문을 확보, 소개한다.[편집자 주]

△퇴계 이황의 호남학맥 고찰(이형성 전남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은 34세 때 급제한 이후, 크고 작은 벼슬을 역임하면서도 학문에 힘썼다. 벼슬과 학문을 병진하면서 선비의 올곧은 정신을 간직하며 대의(大義)를 지향하였다. 학문의 난숙기에 이르러서는 정주학(程朱學)에 반하는 불교&;양명학(陽明學)을 배척하는가 하면 ‘숙흥야매주해(夙興夜寐箴註解)’에 대한 선학(禪學)의 요소를 비판하고, 성리학에 대한 ‘주기설(主氣說)’의 경향도 공박했다. 이황은 한거(閑居)에는 온자(溫慈)한 마음으로 제자 양성에 힘을 쏟았다.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에는 문인 309명이 수록됐다. 그밖의 자료에도 이황의 문제자들이 39명이나 추가로 보인다. 직접 수학하지 않은 인물들이 보이기에 이를 고증할 경우, 33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황은 문인들에게 선비의 풍도를 간직하도록 교도하면서 출처를 신중히 하도록 했다. 특히 출사하는 제자들에게는 공의(公義)로 사직을 받들고 백성을 다스릴 것을 힘주어 말했다. 이를 보면 자기 보신과 안위를 생각한 것이 아니고, 바로 대의(大義)를 통해 사회적 기풍을 진작시키려는 강한 의지의 발로로 여겨진다. 우선, 제현록(諸賢錄)과 여러 자료의 330명이 넘는 문인 가운데 호남에 속한 문인 20여 명을 지역적으로 분류하고 약술했다. 그 다음 전남 나주의 경현서원(景賢書院), 전북 진안의 주천사(朱川祠)에 이황을 배향하고 추숭(追崇)한 것을 통해 지역사회의 학문적 동질감을 살펴보앗다. 이는 퇴계학맥을 전관적(全觀的)으로 탐구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고, 나아가 각 지역사회에서 퇴계학(退溪學)에 대한 발현 양상도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이황은 성리학을 난숙하게 발전시키고 널리 보급하였다. ‘도산급문제현록’과 기타 자료를 통해 이황의 추가문인까지 살펴보았듯이 그 수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더 필요하다. 이러한 고증을 거친다면 아마도 309명에 39명을 더한 숫자보다 많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도산급문제현록’과 기타 자료에서 밝힌 호남의 문인들은 21여 명 정도가 된다. 이들 가운데 전북에 속한 퇴계학맥 5인이었다. 이들 문제자들은 스승의 학덕을 수용, 지행병진에 힘쓰고 또한 재야에 있거나 벼슬에 있을 적에는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자기의 직분과 역량을 발휘하는데 진력하면서 현실의 모순을 간과하지 않고 그 문제점을 상소하기도 했다. 사숙한 문인 장경세는 시대적 조류에 힘입어 성리학적 이론보다는 문학을 통해 성리학적 명분과 의리를 십분 발휘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출사한 문인은 공의(公義)로 사직을 받들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를 보면 자기 보신과 안위를 생각한 것이 아니고, 바로 대의(大義)를 통해 사회적 기풍을 진작시키려는 강한 의지의 발로다. 더욱이 호남에서 사환생활(仕宦生活)을 한 관리들이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 덕망이 있는 이황의 문인들도 있다. 이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에 따른 행의를 살펴볼 경우, 퇴계학맥으로서 유풍진작도 엿볼 수 있다. 또한 전남 나주의 경현서원(景賢書院), 전북 진안의 추천사(朱川祠)에 이황을 배향, 추숭(追崇)하고 있다. 이는 이황에게 학문적 또는 도덕적 감화를 받아 지역사회에서 그 정신을 기리면서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것이었으니 조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퇴계학맥을 전관적(全觀的)으로 탐구하는 데 보탬이 되기 때문이고, 나아가 각 지역사회에서 ‘퇴계학(退溪學)’을 발현한 양상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 퇴계학맥에 대한 지역적 연구는 이황의 삶과 사상을 새롭게 접근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나아가 퇴계학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여 후세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요소도 된다. 특히 각 지역에서 활동한 퇴계학맥의 실상과 성격을 통해 향촌사회의 유교적 정체성을 엿보는 데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퇴계와 반계의 정치적 만남 - 理 哲學을 중심으로(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반계 유형원의 개혁안&;개혁사상은 ‘반계수록’에 집약된다. 그의 개혁안은 사상적으로 성리학의 도기불리(道器不離)의 정신과 ‘주례’의 이상세계를 지향한 것이었다. 성리학에 대한 유형원의 관점을 보면 초기에는 ‘기’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다가 ‘반계수록’을 완성할 무렵에는 ‘리’를 중시하는 쪽으로 사상적 전환을 했다.(‘與鄭文翁東稷論理氣書’). 그는 리기, 사단칠정, 인심도심 등의 문제에서 선배인 한백겸(韓百謙m 1552~1615)과 마찬가지로 퇴계 이황의 관점과 견해에 동조했다. 리를 ‘실리(實理)’라 강조하고 실리로써 사실(實事)에 대처하려 했다. ‘실리’, ‘실사’의 정신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반계수록’은 ‘學’으로서의 실학의 존재를 확인케 해준 저술이다. 그의 개혁안은 사회 구조와 국가 체제를 밑바탕에서부터 재검토하려는 것이으로서 율곡의 개혁안과는 차이가 있다. 전자가 종본적(從本的) 개혁안이라면 후자는 종사적(從事的)개혁안이라 할 수 있다. 전자가 ‘주례’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후자는 ‘주역’의 변통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복고’는 근본 원리로 돌아가자는 ‘반정(反正)’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유형원의 고금관, 이기관은 퇴계 이황과 잘 통한다. 그는 ‘반계수록’을 통해 ‘복고적 개혁사상’을 제시했다. 복고적 개혁사상의 모델은 주례였다. 유형원은 ‘도기불리(道器不離), 리기불상리(理氣不相離)’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 ‘주례’라고 보았다. 이 점에서 유형원은 이이의 사상, 특히 ‘리기불상리’의 관점을 중시하면서도 보다 큰 틀에서는 ‘리기불상잡’을 중시하는 이황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부안 재지사족을 통해 본 퇴계, 반계 학맥 연구&;부안김씨 김석옥 가계를 중심으로(김승대 (전북도청)
부안김씨 김석옥 가계는 일재 이항,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가문과 연혼을 통해 호남지역의 주요 세거가문으로 성장한다. 특히, 김석옥의 아들 김선의 외손 송함은 유문원(유형원의 6촌이자 문인) 외조가 되어 반계 류형원 학맥과 연계된다. 김석옥의 3남 김계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도동서원에 배향된 인물로 주목된다. 또, 김석옥의 차남 김점은 일재 이항의 문인이며 기대승의 아들 기효간을 사위를 맞이해 당대 연혼을 통한 퇴계, 반계 학맥과 연계됨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현재 부안 석동산에 있는 김석옥 묘갈은 기대승이 짓고, 송인이 쓴 글씨가 남겨져 있다. 첫째, 부안김씨 김석옥 가계와 연계된 도동서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발굴된 ‘원적(院籍)’, ‘도동심원록(道東尋院錄)’은 지역사 연구의 보물이다. 도동서원이 배출한 인물에 대한 연구, 서원을 방문한 명단에 대한 성격 규명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부안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성격의 반계학단에 대한 본격화가 필요하다. 김석옥의 외손인 송함, 송시추, 유감, 유문원, 나용보, 나경우, 김서경 등 부안지역 인물들에 대한 체계적인 사료조사 및 학술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반계 관련 타지역의 사우(師友), 문인에 대한 학술조사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셋째, ‘반계집’ 발간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존하는 반계의 저작물인 ‘반계수록’ 등 반계 관련 고문헌을 바탕으로 반계 문집 발간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반계 저작물과 반계학단을 아우르는 연구기관의 발족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넷째, 호남실학 및 한국실학 전반에 대한 학술 로드맵, 총체적인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우반동에 ‘반계기념관’ 건립 또는 ‘호남실학원’ 재건립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가치 있는 반계유적지에 대한 문화재 지정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전라북도 지정문화재인 반계선생 유적지(반계서당)에 대한 국가 사적 승격 신청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또한 동림서원터, 반계 고택터, 정사암터 등에 대한 문화재 지정도 시급하다. 다섯째, 부안김씨 김석옥의 아들로 걸출한 인물로 평가되는 김점, 김계 등에 대한 하서 김인후, 퇴계 이황 학맥 등 구체화된 학술 조사 및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부안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지역의 퇴계 학맥에 대한 사료 및 현장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영호남 학술문화행사와 교류가 정례화, 지속화해야 한다. 특히, 퇴계학과 반계학 등 지역과 역사라는 시공간을 묶어 영호남과 해당 지역을 함께 상생하는 프로그램 및 사업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길 소망한다./이종근기자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